[시론] 규제는 가난을 부를 뿐이다
세계 최강 미국 경제를 이끌어온 동력이 무엇이냐는 의문을 가끔 품게 된다. 20세기 중반까지는 풍부한 자원과 돈, 우수한 노동력이었다. 록펠러와 카네기로 대표되는 석유재벌, 철강재벌은 그런 배경에서 성장했다. 20세기 후반에는 혁신이었다. 공장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경제 활력이 떨어지자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정보기술(IT) 혁신이 일어났다.

21세기 들어 미국은 그간 다져온 IT 분야 경쟁력을 토대로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초 미국 정부는 ‘스타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인공지능시스템을 운전자로 인정함으로써 자율주행차에 운전자가 반드시 타야 한다는 규제를 풀었다. 이 조치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선, 자율주행차가 일반 도로를 운행할 수 있는 시기가 획기적으로 앞당겨질 전망이다. 다음으로, 미국 정부가 놀랄 만큼 신속히 움직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구글이 지난해 11월 민원을 제기한 지 석 달 만에 규제를 풀어준 것이다. 또 규제 폐지의 필요성이 임박하지 않은 시점에서 선제 대응했다는 점이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정부가 업계에 긍정적 신호를 보냄으로써 민간투자와 기술개발을 자극하는 효과를 거뒀다.

이렇게 본다면 미국 경제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진정한 동력은 도전과 창의를 가능케 하는 유연한 사고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는 기업이 마음껏 상상하고 뛰어놀 수 있도록 마당을 깔아줬다. 최근 한국 경제에 수출 감소, 주력산업 경쟁력 저하, 잠재성장률 하락 등 여러 문제가 겹치고 있다. 정부도 도전과 창의를 불러일으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규제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규제 개혁이 효과를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방식과 과정을 세심히 설계해야 한다.

첫째, 연관된 규제는 모두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풀어줘야 한다. 산업의 융복합 추세에 발맞춰 규제는 대개 여러 부처에 걸쳐 있거나, 소관 부처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둘째, 규제는 원칙적으로 풀어주되 소관 부처가 필요성을 소명할 때에만 존속시켜야 한다. 정부는 가만 놔두면 규제를 쥐고 있으려는 속성을 갖고 있는 만큼 이런 방식이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규제의 대상이 산업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단계라도 미리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이는 미국 정부가 자율주행차에 대한 규제를 풀어준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넷째, 정부와 민간이 모여 규제 존치 여부를 토론하는 자리를 가급적 자주 마련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규제마다 옥석이 가려지고, 가치 있는 규제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지난 2월에 대통령 주재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신소재, 고급소비재 등 5대 신산업 분야 규제 완화를 통해 투자를 촉진하는 방안을 토론했다. 기업들이 애로사항이라고 신고한 규제는 일단 모두 죽이고 꼭 필요한 규제만 살리는 ‘네거티브 심사방식’을 도입했다. 그 외에도 앞서 언급한 규제개혁의 방식과 과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노자의 무위(無爲)로부터 하이에크의 자유주의까지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상가들의 견해는 일치한다. 규제는 백성을 무능하게 하고, 결국은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도전과 창의를 옥죄고 있는 규제를 풀어 기업가 정신을 샘솟게 하고, 창업과 투자에 물꼬를 터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시점이다.

박희재 <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