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칼럼] '꾼들의 게임' 이어선 안된다
기업의 구조조정에는 늘 고통이 따른다. 실패한 경영자의 책임과 함께 근로자 희생도 동반한다. 책임 소재와 고통 분담을 둘러싼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갈등 해결이 어려울 때 외부 조정이나 중재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법 절차에 따른 공적·사적 조정도 있다. 정치권 시민단체 등 외부 세력이 자신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개입하기도 한다. 대규모 사업장일수록 더욱 그렇다.

갈등 조정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역할과 한계를 잘 안다. 조정 초기에는 노사 양측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갈등은 쌍방의 견해차에서 비롯한다. 노사 모두 지나친 기대치를 낮춰야 양보와 합의의 여지가 생긴다. 기대치를 낮추려면 당사자가 듣기 좋은 말만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정자로선 궁극적으로 당사자들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갈등 요인들을 조목조목 따져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도록 돕는다. 이런 이유로 노련한 갈등 조정 전문가일수록 자신의 역할과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 거다.

갈등 해결과는 거리 먼 외부세력

하지만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은 다르다. 자신들이 갈등 해결자임을 자처한다. 그러면서 자신들과 입장이 같은 어느 한쪽을 거든다. 기대치를 오히려 높이는 이런 행태는 한편의 공감을 얻기는 쉽지만 갈등 해결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가고 만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이나 2011년 한진중공업 파업을 보자. 정치권이나 외부 단체들은 가세하자마자 노조의 기대치를 크게 높였다. 갈등의 장기화는 불보듯 뻔한 결과였다. 노사는 물론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용도 그만큼 불어났다. 쌍용차 노조의 77일간 점거 파업으로 3100억원대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한진중공업의 노사 갈등은 ‘희망버스’로 알려진 외부 개입과 더불어 11개월이나 지속됐다. 그러고 나서도 결국은 노사 당사자만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엄청난 피해는 고스란히 노사의 몫이 됐다.

해운·조선업이 구조조정과 노사 갈등 소용돌이 속에 있다. 노사가 비상한 각오로 고통 분담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갈등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결국 당사자들일 수밖에 없다. 문제를 회사 밖으로 끌고 나가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4·13 총선에서 어느 때보다 노동계 출신들이 많이 당선됐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늘 보였지만 노사문제에 관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이번 국회가 더 거셀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 예방적 조정에 적극 나서야

구조조정 반대 파업은 노동관계법으로 보면 불법 파업이다. 생산시설 점거 등이 이뤄진다면 더더욱 불법적 양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럴 즈음 ‘불법 엄정대처’ 담화문을 발표하고 공권력 투입 등 원칙 대응 카드를 내밀 것이다. 이런 관행은 언제까지 반복될 것인가.

정부는 노사 갈등에 대한 예방적·선제적 조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등 고용대책뿐만 아니라 예방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의 노사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얼마 전 근로자의 날 시위에선 구조조정 반대 피켓들이 등장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달 29일 구조조정 반대 상경 투쟁까지 벌였다. 구조조정 노사 갈등이 외부 문제화하는 셈이다. 경영진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 근로자의 고통 분담과 함께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