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투자절벽'…신규설비 4분의 1 토막
올 들어 국내 상장회사의 설비투자가 작년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설비투자 계획을 취소하는 것은 물론 생산 중단, 공장 폐쇄 등도 잇따르고 있다. 수출과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이 신규 설비 확충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국내 상장사가 발표한 설비투자 계획 금액은 1조8547억원이다. 작년 같은 기간(7조2502억원)의 25.5%에 불과하다. 설비투자 공시 건수도 작년 같은 기간 27건에서 올해 23건으로 줄었다. 설비투자 계획 공시는 자기자본의 10% 이상(자산 2조원이 넘는 곳은 5% 이상) 투자 계획을 잡을 때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대한항공 롯데칠성음료 등 다섯 개 기업이 5000억원 이상 대규모 설비투자를 계획했지만 올해는 단 한 곳도 없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5대 경기민감 업종(조선 해운 철강 건설 석유화학)의 신규 투자 공시는 전무(全無)했다.

기업들이 잔뜩 웅크린 것은 유럽 등 선진국 경기가 부진한 데다 국내 소비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아서다. 수출은 15개월째 줄어들고 있다. 1분기 민간소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감소세(전 분기 대비 -1.7%)를 보였다.

기업들은 설비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무기한 연기하고 있다. 웅진에너지는 2550억원 규모의 태양전지용 웨이퍼 생산 공장을 설립하려던 계획을 대폭 축소해 647억원만 투자하기로 했다. 건설자재용 금속재료(데크 플레이트)를 생산하는 덕신하우징도 작년 9월 발표한 100억원 규모의 공장 신설 계획을 지난달 말 보류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제조업 재고가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어 기업 입장에선 신규 투자보다 당장의 생존이 우선인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