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있는 판교고등학교는 예전 이름이 삼평고등학교였다. 2015년 4월 삼평고는 학교 이미지 제고를 위해 판교고로 교명 변경을 추진했다. 이 학교는 그동안 “4평도 안 되는 3평 학교냐”는 등 교명으로 인해 놀림 소리를 들어왔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인접한 판교동 주민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판교동에 고교가 추가 설립되면 ‘판교’라는 명칭을 써야 하는데, 다른 곳에서 이를 먼저 써서는 안 된다”는 게 요지였다. ‘판교’를 둘러싼 삼평동-판교동 주민 간 갈등은 교육청에서 삼평고의 손을 들어줘 올해 3월 교명을 판교고로 바꾸면서 일단락됐다.

‘판교(板橋)’는 시쳇말로 요즘 뜨는 지명이다. 2000년대 들어 판교신도시가 개발되고 판교테크노밸리 등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곳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전만 해도 경기 광주군 낙생면에 속해 있던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판교’라는 지명이 우리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1970년 산업화의 상징인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면서부터다. 1972년 ‘판교나들목(판교IC)’이 개통되면서 판교는 ‘경제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를 서울과 수도권으로 퍼져나가게 잇는 교통 요충지로 떠올랐다. ‘판교톨게이트’도 낯익은 말이 됐다. ‘판교’는 그렇게 경부고속도로의 탄생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성남시 분당구 일대다.

판교가 각광 속에 우리 곁으로 다가온 뒤안길에는 사라져간 우리말도 있다. 원래 조상 대대로 불러오던 ‘널다리’ 또는 ‘너더리’란 지명이 그것이다. 우리말과 땅 이름에 관심을 두고 전국 각지의 지명을 연구해온 배우리 선생은 “널다리나 너더리의 ‘널’ ‘너’는 ‘넓음(廣)’을 뜻하는 말이며 ‘다리’ ‘더리’는 ‘들(野)’에서 변형된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지금의 판교는 원래 ‘넓은 들’을 뜻하는 곳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던 것을 일제 때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엉뚱하게 한자로 ‘널빤지 판(板), 다리 교(橋)’를 취해 고유한 이름을 잘못 옮겼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일설에는 판교의 지명 유래를 마을 앞 개울(운중천)에 판자로 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다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판교동 주민센터는 홈페이지에서 지명 유래를 이같이 소개하고 있다. ‘널다리’는 사전에도 올라 있다. 널빤지를 깔아서 놓은 다리란 뜻으로, ‘판교(板橋)’와 같은 말로 풀고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지금의 판교는 본래 ‘널다리’, 또는 ‘너더리’ 마을로 불리던 곳이라는 점이다. 우리 고유의 감칠맛 나는 땅 이름을 한자 지명에 밀려 잃어버린 꼴이 되고 만 셈이다.

경기 용인 지역에서 발원해 한강으로 흐르는 ‘탄천’도 딱딱한 한자어가 살갑고 정겨운 우리말 지명을 밀어낸 경우다. 탄천은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서 양재천과 만나 올림픽주경기장 옆에서 한강으로 합류하는 내(川)다. 지금은 다들 탄천으로 알고 있지만 본래는 숯내, 검내 등으로 불렀다. 조선시대 강원도 등지에서 목재와 땔감을 한강을 통해 싣고 와 건너편 뚝섬에 부렸는데, 이걸 갖고 숯을 만든 곳이 바로 탄천 부근이었다. 그러다 보니 개천 물도 검게 변했다고 하는 데서 숯내 또는 검내로 불렀다고 한다. 이를 그대로 한자어로 옮긴 게 ‘탄천(炭川)’이다. 숯내나 검내는 어감도 부드럽고 말 속에 옛 정서와 문화가 온전히 살아 있다.

탄천은 어감도 딱딱할뿐더러 한자를 함께 익히지 않는 한 무슨 말인지 알 도리가 없다. 살가운 우리 고유어를 찾아 자주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