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오바마의 유머
미국에서 대통령의 유머는 국민들과의 거리감을 없애는 최고의 덕목으로 지도자의 능력에 속한다. 레이건은 1981년 괴한의 총을 맞고 수술실에 실려갔을 때 의사들에게 “여러분이 공화당 지지자였으면 좋겠는데…”라고 조크를 던졌다. 당시 미국 언론은 “레이건이 유머로 국민을 안심시켰다”고 평했다.

백악관출입기자단 연례만찬은 미국 대통령이 유머감각을 뽐내는 공식적인 자리다. 백악관출입기자협회(WHCA)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1920년부터 매년 4월 마지막 토요일에 열리고 있다. 여야 정치인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스타, 연예인 등이 참석하면서 최근에는 지나치게 행사가 커지고 원래 취지가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주말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이 행사에 참석해 30여분간 연설하며 2600여명의 청중을 웃겼다.

한창 경선 중인 대선 후보들이 도마에 올랐다. 오바마는 트럼프의 외교경험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며 “트럼프는 수년 동안 숱한 세계 정상을 만났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오바마가 그 정상들을 하나씩 예로 들면서 박장대소가 쏟아졌다.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티나….” 1990년대 미스유니버스 조직위를 인수해 미인대회를 주최한 트럼프를 비꼰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서는 “이제 막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이웃집 아줌마 같다”면서도 “내년에는 이 자리에 설 ‘그녀’가 누굴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해 은근한 지지를 보냈다.

행사장에 참석한 샌더스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빛나는 새 얼굴’이라며 칭찬하는가 싶더니 ‘동무(comrade)’라고 불러 그의 사회주의 성향을 꼬집었다.

오바마는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머감각이 뛰어나다. 재선에 성공한 직후 초대된 4년 전 만찬에선 공화당 후보에게 1억달러를 기부했다는 재벌 셸던 아델슨을 비꼬았다. “그 돈이 있으면 섬을 하나 사서 ‘노바마(Nobama·오바마는 안 돼)’라고 이름을 붙이지 그랬냐?” 이번 만찬에서 그는 대통령 생활의 회한을 위트있게 표현해 큰 박수를 받았다. “8년 전 나는 이상주의와 힘으로 넘치는 젊은이였는데, 지금 나를 보라. 회색머리에 관으로 들어갈 날만 남았다.”

미국 대통령들의 유머는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백악관 공보팀은 물론 외부 전문가들까지 총동원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래서 말실수가 거의 없고 정치를 국민과 더 가깝게 한다. 정치 하면 극한의 대립을 떠올리는 우리 현실에서는 부러운 관행이기도 하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