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서원 40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 40년 맞은 이해인 수녀

2008년부터 대장암 치료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용할 가치있고 헛된 것 없어"
이해인 수녀 "암 투병 후 더 깊어진 감사, 더 애틋해진 사랑"

“제주에서 날아와 기다리고 있는 ‘원년 독자’들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요. 40여편밖에 되지 않는 간단한 시집인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는지…. 어수선한 시국 때문에 마음에 평화가 없던 시절, 수도자가 쓴 잔잔한 서정시라는 점에서 끌렸던 것 같아요. 지금 독자들은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에 다시 읽어보는 게 아닐까요?”

1976년 출간돼 큰 사랑을 받은 이해인 수녀(71·사진)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출간 40주년을 맞았다. 이 수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스무 살이 되던 해 수도원에 입회했다. 1976년 종신서원을 기념하는 의미로 그간 쓴 시를 모아 시집을 출간했고, 한 일간지에 소개되면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현재까지 판매량이 38만권을 넘는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림동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에서 열린 ‘민들레 영토에서 꽃피운 사랑과 기도의 삶, 40년’ 강연회에 앞서 이 수녀를 만났다. 책을 출간할 당시 30대이던 그는 어느덧 ‘할머니 수녀’가 됐다. 2008년부터 대장암 투병 중인데도 여전히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했다. 옛날 이야기를 할 때면 소녀처럼 웃었다.

이 수녀는 이날 행사를 “한 사람의 수도자로서 도망가지 않고 꾸준히 견뎌온 세월을 자축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1980~1990년대 ‘민들레의 영토’는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내 시가 민들레 씨앗처럼 세상 낮은 곳으로 날아가서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의 마음에 희망의 싹을 틔운 순간이 가장 기뻤어요.”

대중적인 인기로 인한 말 못할 어려움도 많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수도원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를 사칭하는 이가 멋대로 출판 계약을 하기도 했다. 이 수녀는 “수도원도, 나도 힘든 시절이었다”며 “수도자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유명세를 치르면서 얼굴에 기미까지 피었다”고 회고했다.

2008년 책이 스테디셀러가 되고 시집의 인기도 안정화됐을 무렵 그는 대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위독설’ ‘선종설’도 돌았다. 최근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한 건 이런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제가 목소리도 쌩쌩하고, 몸도 야위지 않으니 ‘항암 방사능 치료한 사람 맞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고통이 무엇인지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봐 암 투병 중에 통풍도 여러 차례 왔어요. 지난해 10월부터는 대상포진 때문에 통증 클리닉에 다니고 있고요.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라고 하느님께서 이런 아픔을 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투병 후 달라진 것이 뭐냐고 묻자 “감사는 더 깊어지고, 사랑 더 애틋해지고, 기도는 더 간절해졌다”며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 속 한 구절을 인용했다.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 중 하나는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어요. 병이 들거나 불행이 닥쳤을 때, 그것을 ‘역이용’해 뭔가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냥 불행해 하기만 하는 건 내 손해예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용할 가치가 있고, 헛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이름 앞에 붙는 많은 수식어 가운데 ‘국민 이모 수녀님’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그는 “앞으로도 행복한 길 위에 살아 숨 쉬는 순례자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범한 행복을 캐낼 줄 아는 시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시집 《작은 기쁨》에 실린 ‘행복도 새로워’라는 시 한 구절을 들려줬다. ‘내가 사랑하고 / 사랑받는 일 또한 / 당연히 마시는 공기처럼 / 늘 잊고 살았네 /…/ 눈에 보이지 않는 / 모든 것 / 새롭게 사랑하니 / 행복 또한 새롭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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