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호암상을 받은 김현수(뒤쪽)·조순실 들꽃청소년세상 공동대표가 경기 안산시 들꽃청소년세상 인근 공원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올해 호암상을 받은 김현수(뒤쪽)·조순실 들꽃청소년세상 공동대표가 경기 안산시 들꽃청소년세상 인근 공원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거름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1994년 어느 여름날 새벽, 자신들이 운영하던 교회의 문을 열자 악취가 가득했다. 그 정체를 아는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아이 여덟 명이 교회 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아이들의 옷은 언제 빨았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꾀죄죄했다. 양말은 걸레처럼 새까맸다. 곧 잠에서 깬 한 아이가 말했다. “배고파 죽을 것 같아요.” 가슴이 뭉클했다.

올해 호암상 사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현수(61)·조순실(59) 들꽃청소년세상 공동대표가 거리의 청소년을 보듬기 시작할 때의 얘기다.

“신문이나 TV에서만 보던 가출 청소년을 눈으로 직접 본 거예요.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경기 안산시 들꽃청소년세상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와 조 대표는 22년 전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부부다. 수상을 축하한다는 인사에 이들은 손을 꼭 잡으며 미소 지었다. 김 대표는 “상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닌데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가출 청소년을 위한 격려로 생각한다”며 “상금 3억원도 모두 청소년을 위해 쓸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볼우물이 곱게 패었다.

○여덟 명의 가출 청소년과 만나다

안산에서 작은 교회를 운영하던 이 부부의 삶은 아이들을 만난 뒤 송두리째 바뀌었다. 처음엔 몇 번 오다 말겠지 싶어 밥을 먹이며 타일렀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만 해도 몰랐어요.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걸요.”

아이들의 ‘기습 방문’은 계속됐다.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다. 교회가 난장판이 되곤 했다. 교회 구석에 똥을 누고 가는 아이도 있었다. 조 대표는 ‘똥교회’로 소문날까 싶어 부랴부랴 치웠다. 그것도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내쫓았다. 그리고는 자물통 네 개를 사다가 교회 문을 걸어 잠갔다. 이후 2~3개월간 잠잠했다. 그렇게 한순간 소동으로 그치는 줄 알았다.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여겼다.

아이들을 다시 만난 건 같은 해 10월9일이었다. 두 사람은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했다. 교회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 아침 운동을 나간 길이었다. 아이들이 그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친 아이들은 반가운 얼굴로 한달음에 달려오며 외쳤다. “배가 너무 고파요.” 김 대표는 순간 가슴이 저릿했던 게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두 사람은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 밥을 먹였다. 이때 비로소 아이들은 말문을 열었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갈 곳이 없어진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빠의 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뛰쳐나온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사정을 알고 나니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다. 부부는 아이들을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전쟁 같은 나날

부부는 다음날 안산시청 복지 관련 부서를 찾았다. 법적으로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어서 제도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김 대표는 “수소문을 해봤지만 아이들을 반기는 곳은 없었다”며 “문득 눈에 콩깍지가 씐 것처럼 ‘아무도 안 받아준다면 우리가 보듬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교회가 세 들어 있던 건물 2층 사택에 여자아이 두 명을, 교회 공부방에 나머지 남자아이 여섯 명을 재웠다. 아이들의 생활 하나하나를 면밀히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심각했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기본이었고 가스나 본드 같은 약물을 흡입하는 아이도 있었죠. 우리가 발을 잘못 들인 게 아닌가 후회도 했어요.”

1995년 두 사람의 일기장은 약물에 취한 아이들과 싸운 얘기로 가득했다. 약물에 찌든 아이를 붙들고 울었다. 화도 냈다. 환각제에 취한 상태로 거리에서 소란을 피워 동네가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다. 지역 주민은 물론 학교 관계자들까지 부부에게 “왜 그런 불량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느냐”고 따졌다.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는 오해도 받았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고 조 대표는 말했다.

교회 생활을 접은 뒤 1년간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아파트로 옮겨 살다가 지역주민 민원 때문에 쫓겨났다. 갈 데가 없어 한 달은 승합차에서, 6개월은 여인숙에서 살기도 했다.

김 대표는 “목회활동과 병행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며 “교회 운영을 그만두고 가출 청소년을 돌보며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1996년 대안학교인 ‘들꽃피는학교(현 들꽃피는세상)’를 설립했다. 대출금을 끌어모아 작지만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들꽃에 희망을

[人사이드 人터뷰] "거리로 내몰린 청소년들 '상처' 보듬어 당당한 인격체로…부부의 평생 보람이고 운명이죠"
학교 이름을 들꽃으로 지은 데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 들꽃과 닮았다는 생각에서다. 김 대표가 직접 지었다. “들꽃은 온갖 비바람을 맞으며 크거든요. 보호를 받지 않고 살아남다 보니 무척 강해요. 활짝 피었을 땐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가출 청소년과 닮은꼴 아닌가요?”

가출 청소년이 활동할 수 있는 체계를 하나씩 마련했다. 가장 먼저 만든 게 ‘그룹홈(group home)’이다. 가출 청소년이 부모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자와 가족을 이뤄 생활하는 프로그램이다.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지역 기업, 복지재단, 교회 등이 주거공간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줬다.

가출 청소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상담 프로그램인 ‘소그로(so grow)’도 주요 활동으로 꼽힌다. 청소년이 자립을 준비하며 일하는 작업장도 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두 사람은 오는 6월1일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는다.

두 사람은 수상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딸을 떠올렸다. 1994년 당시 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가출 청소년을 돌보느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조 대표는 “초반에 엄마를 빼앗긴 것 같아 속상해 소리 내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마음이 아팠다”며 “낯선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잘 받아들여준 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때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여러 친구와 살며 다양한 삶을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고 답하는 딸을 힘껏 안아줬다.

○“청소년 눈높이에서 함께할래요”

두 사람은 지난달 ‘아주 특별한 식사’를 했다. 22년 전 처음 교회에서 만난 가출 청소년 여덟 명 중 한 명을 만났다. 30대 후반이 된 아이가 임신한 아내와 함께 이들을 찾아왔다. 당시 엄마가 집을 나가 할머니와 살다 집을 뛰쳐나온 아이였다. 가장이 됐다며 곧 태어날 아기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고 했다. 조 대표는 “밥이 정말 꿀맛이었다”고 말했다.

희망을 찾은 아이들을 볼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부부의 삶을 닮고 싶다며 사회복지사가 된 아이도 있다.

두 사람에겐 꿈이 있다. 가출 청소년이 자립할 수 있는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이들은 22년간 1000명이 넘는 가출 청소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하지만 거리 곳곳엔 아직도 방황 중인 가출 청소년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현실적으로 그들 모두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도 청소년 스스로 희망을 찾고 꿈을 키울 터전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다.

조 대표는 “청소년 문제는 당사자인 청소년이 가장 잘 안다”며 “청소년이 자신들의 가치를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터전을 이뤄나가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그림자처럼 도와주고 싶다는 말도 보탰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아무렴”이란 대화를 주고받았다. 김 대표는 말했다. “거리의 청소년이 웃으며 꿈을 키워나갈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어요.”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안산=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