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 장롱 속에 갇힌 '먹는샘물'

[국어와 영어]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배시원 쌤의 신나는 영어여행
“생수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직업의 자유와 국민의 행복추구권(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을 침해한다.”

1994년 3월 헌법재판소는 국내 생수산업 발전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따라 그동안 불법이던 ‘생수’의 제조, 시판이 공식적으로 허용됐다. 이듬해 정부는 ‘먹는물관리법’을 제정해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했다. 시장도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생수 판매액은 2000년 1500억원에서 2015년 6220억원으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어법과 관련해서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생수 시판을 법제화하면서 튀어나온 ‘먹는물’ ‘먹는샘물’이 그것이다. 이들은 특정 상표명이 아니라 보통명사로 쓰인 말이다. ‘먹는물’은 예전부터 쓰던 한자어 ‘음용수’를 고유어로 순화한 것이다. ‘먹는샘물’은 생수를 바꾼 말이다. 음용수와 생수는 사전에 올라 있는 단어지만, ‘먹는물’ ‘먹는샘물’은 아직 단어로 인정받지 못해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국립국어원에서 수집하는 ‘신어자료집’에 ‘먹는샘물’이 등재돼 있을 뿐이다. 2003년에 올랐으니 10년도 훨씬 더 됐다.

정부에서는 상업적으로 ‘생수’란 말을 쓰지 못하게 규제한다. 자칫 “수돗물 등 다른 음용수는 ‘죽은 물’이란 말이냐”란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다 보니 ‘생수’는 시중에서 통용되는 말이지만 법적으로나 정부 방침으로나 근거가 없는 어정쩡한 말로 남았다. 법정용어로 제시된 ‘먹는샘물’은 생긴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반인의 언어 사용 실태와는 거리가 멀다. 입말에서나 글말에서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또 하나 주시해야 할 부분은 띄어쓰기다. ‘먹는샘물’은 ‘관형어+명사’ 꼴의 합성어류에서 띄어쓰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아직 단어로 인정받지 못한 이 말은 규범적으로는 ‘먹는 샘물’이라 띄어 써야 한다. 하지만 ‘생수’의 대체어로 제시되면서 심리적으로 붙여 쓰고 싶은 게 사실이다. 법정용어로서의 ‘먹는샘물’을 붙여 쓴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국가대표 축구팀 응원단 ‘붉은악마’를 고유명사로 보고 붙여 쓰는 것도 같은 이치다.

단어는 아니지만 이른바 ‘단어화 과정에 있는 말’들은 단어 사이에 휴지(休止)를 느낄 수 없어서 붙여 쓰기 쉽다. 전보에서 살핀 ‘젊은 피’ ‘젊은 층’을 비롯해 ‘흰 우유’ ‘즐길 거리’ ‘알 권리’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젊은 피’는 사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수사적 표현으로, 이미 단어의 자격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 ‘흰 우유’ 역시 ‘딸기우유, 초코우유’ 등과 어울려 관용적으로 단어처럼 인식돼 쓰인다. ‘볼거리, 읽을거리, 먹을거리’는 단어로 인정돼 붙여 쓴다. 하지만 같은 유형인 ‘탈 거리, 즐길 거리, 마실 거리’로 가면 달라진다. 이들은 단어로 대접받지 못해 모두 띄어 써야 한다. 글쓰기에서 이들을 구별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런 것들이 띄어쓰기를 어렵게 여기게 하는 요인이다.

우리 맞춤법은 이런 부분까지 세세히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단어화 과정에 있는 말’을 방치함으로써 띄어쓰기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측면이 있다. 아직 단어로 처리할 형편이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자주 쓰는 말의 띄어쓰기를 용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국립국어원 같은 권위 있는 기구가 나서야 한다. 그것이 13년 전 신어자료집에 담긴 채 언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먹는샘물’을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다.

배시원 쌤의 신나는 영어여행 - 이(tooth)와 관련된 표현들…어금니는 영어로?

[국어와 영어]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배시원 쌤의 신나는 영어여행
어금니는 영어로 뭘까요? 네, 정답은 바로 ‘몰라(molar)’입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누구나 맞힐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럼 저도 용기를 내서 오늘은 ‘이’와 관련된 표현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치과의사 선생님은 dentist라고 하는 것은 다 아시지요? 라틴어 dent가 기본적으로 ‘이’를 뜻하기 때문에, dent가 들어간 단어는 기본적으로 ‘치아’와 관련이 있답니다. 예를 들어 dent에 ‘움푹 들어가거나 찌그러진 곳’이란 뜻이 있는데,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원래 dent에 ‘이로 물린 자국’이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정비소에 한글로 ‘덴트’라고 쓰인 간판을 보신 분들도 있을 텐데, 당연히 차의 움푹 파인 곳을 수리해준다는 말입니다. 참고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삼지창’은 trident라고 합니다. 네, ‘세 개의 이빨’에서 온 단어이지요.

‘송곳니’는 영어로 canine tooth라고 합니다. 여기서 canine는 ‘개’를 뜻하는 단어랍니다. ‘개의 이빨’처럼 날카롭게 생겨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네요.

그런데 ‘냉소적인’이란 뜻을 가진 cynical이란 단어 역시 ‘개’와 관련된 단어랍니다. cynicism을 ‘견유 철학’ 혹은 ‘견유 학파’라고 하는데, 여기서 견유(犬儒)는 말 그대로 ‘(개와 같은 생활을 한) 선비’를 뜻하는 한자입니다. 명예와 부를 멀리 하고 자연과 일체된 삶을 강조했던 고대 그리스의 금욕주의 학파인데, 꽤나 세상의 부와 명예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햇볕 좀 가리지 마시오”라고 정말 ‘무심히도’ 말했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유명한 일화도 있답니다.

그리고 예전에 말씀드린 거처럼, ‘사랑니’는 wisdom tooth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쯤 이 치아가 생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서양 사람들은 wisdom tooth가 생길 때쯤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또 sweet tooth라는 표현도 있었습니다.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 기억하시죠?

끝으로 spelling bee(영어철자 말하기 대회)나, 텝스에서나 보던 ‘gingivitis(치은염)’이란 단어를, 치약 광고에서 보고 나름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역시 이 세상에 어려운 영어 단어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나랑 친한 단어랑 낯선 단어만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