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유비무환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에 대해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안녕이 역동적이며 완전한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동안 건강관리를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에 역점을 뒀다면 이젠 정신적, 영적 건강도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생활습관 개선과 종교생활, 취미활동 등으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필자에겐 회한으로 남은 일이 하나 있다. 16년 전 아버지가 당황한 목소리로 “개인 의원에서 네 어머니가 유방암이 의심되니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전화하셨다. 어머니는 검사 결과 초기 유방암이었고, 다행히 치료가 잘돼 현재 건강하게 지내신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는 그 이후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한 해를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나셨다. 특별한 이상 징후가 생기지 않는 한 병원에 가지 않는 습관 때문에 보이지 않는 병을 키운 것이다. 게다가 의사인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의 건강을 소홀히 여겼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도 죄스럽다.

건강은 젊고 활력이 넘치는 시기엔 좀처럼 고장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 드는 것은 필연적이다. 건강할 때 잘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과음과 과다한 흡연으로 질병이 발생한 뒤 뒤늦게 후회하는 환자를 수없이 봤다. 후회는 그저 후회로 남을 뿐이다. 질병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최선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과 직장에서 직원 복지 차원으로 제공하는 건강검진 지원 등을 잘 활용하면 질병을 예방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다 보면 이런 일정 주기의 검진도 하지 않고 몸을 혹사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일부 의사도 이런 경향이 있는 걸 종종 본다. 한국의 선진 의료가 해외 동포와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져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도 많은 외국인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내원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암이나 특정 질병에 걸린 사람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생명이 끝나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그 기한이 언제가 될진 모른다. 살아있는 동안 늘 자신의 건강을 점검하고 정확한 검진을 받는 습관이 필요하다. 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음을 뜻하는 말인 ‘유비무환’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윤호주 < 한양대 국제병원장 hiyoon@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