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암 치료기' 가동하는 삼성서울병원
삼성서울병원이 다음달 ‘꿈의 암 치료기’로 불리는 양성자 치료기(사진) 가동을 시작한다. 국내 의료기관 중에서는 국립암센터에 이어 두 번째이고, 민간 의료기관으로는 처음이다. 차세대 방사선기기를 활용한 암 치료 시대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가 암치료기 대중화 신호탄

2008년 아시아 최대 규모 암병원 문을 연 삼성서울병원은 다음달 3일 지상 6층, 지하 4층에 연면적 1만4443㎡ 규모의 양성자치료센터 개소식을 하고 양성자 치료기를 본격 가동한다고 28일 발표했다. 2011년 10월 착공한 지 4년6개월여 만이다.

삼성서울병원은 높이 10m, 무게 170t에 달하는 양성자 치료기 두 대를 가동한다. 양성자 치료기는 수소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를 빛의 60% 속도로 가속한 뒤 환자 몸에 쏘아 암 조직을 파괴한다. 이 때문에 치료 공간은 2.3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싸고 강도 6.5도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양성자 치료기는 대표적인 암 치료법의 하나인 방사선 치료기기다. 엑스레이를 활용한 기존 방사선 치료는 암 부위에 방사선이 도달할 때까지 정상 조직에 영향을 많이 미쳤고 방사선 손실량도 많았다. 양성자 치료기는 암 조직에 닿는 순간 막대한 양의 방사선 에너지를 쏘는 특성이 있어 양성자가 암에 도달하기까지 다른 정상 조직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꿈의 암 치료기라고 불린다.

양성자 치료는 폐암 간암 뇌종양 두경부암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방사선 치료 후 생존 기간이 길어 추가 암 발생 위험이 높은 소아암 환자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재발암 환자도 마찬가지다.

◆소아암 치료 등에 효과

2007년 국립암센터가 국내 처음으로 500억원을 들여 양성자 치료기를 도입했지만 치료 비용(10~20회 치료 기준)이 1500만~2000만원으로 비싸 활용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되면서 환자가 내는 비용이 500만원 수준까지 내려갔다. 소아암은 물론 성인 뇌종양, 식도암, 췌장암 등으로 양성자 치료를 받을 때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 국립암센터에서 양성자 치료를 받은 환자는 285명으로 전년(230명)보다 24% 정도 늘었다.

삼성서울병원이 양성자 치료기를 본격 가동하면서 국내 암 치료 패러다임에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도입한 기기는 기존 양성자 치료기보다 정교한 기술을 활용한다. 점을 찍는 방식으로 빔을 쏘지 않고 선을 쌓듯 쏘는 라인스캐닝 방식을 이용한다.

이 방식 기기를 도입한 곳은 일본 아이자와병원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은 환자는 한 해 평균 10만명 정도다. 이 중 양성자 치료를 선택하는 환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권오정 삼성서울병원장은 “양성자 치료기 도입으로 암을 대하는 방식도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자를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치료 후 삶까지 입체적이고 포괄적 방식의 접근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다른 병원의 차세대 방사선기기 도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병원은 1600억원을 들여 중입자가속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업체를 선정하는 단계로 올해 중 착공에 들어간다는 목표다. 한국원자력의학원도 1950억원을 투입해 중입자가속기치료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