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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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철 대신증권 대표이사 사장(56·사진)은 1985년 입사한 뒤 임원이 되기 전까지 소매영업 일선에서 1등을 거의 놓친 적이 없는 ‘영업통’이다. ‘영업의 달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객’을 강조하지만 나 사장이 투자자를 대하는 자세는 남달랐다.

입사 3년차로 서울 영등포지점에서 일하던 1987년. 증권시장 활황으로 수백만원의 보너스를 받자 동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포니, 엑셀, 프레스토 같은 차량을 뽑았다. 하지만 나 사장은 3년간 모은 400만원으로 당시로는 최신 기종인 AT급(16비트급) 컴퓨터와 도트 프린터를 샀다. 가격이 비싸 지점에서조차 구입할 엄두를 못 내는 제품이었다. “증권사 직원 중에 컴퓨터로 고객의 이름과 투자종목, 수익률 등을 관리한 사람은 아마 제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어느덧 경쟁 증권사 직원들까지 나 사장의 이름을 알 정도로 영업 실력은 정평이 났다. 5년간 영등포지점에서 일하면서 지역 고객을 확대한 뒤 신생 지점인 서울 대림동 지점으로 옮겨가서는 대신증권의 전국 점포를 통틀어 개인 실적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승진도 동기 40명 중에서 가장 빨랐다.

“임원이 되기 전에도 본사에서 근무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고객들이 아른거려 영업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는 나 사장을 서울 마포구 도화동 간장게장 전문점 서산꽃게에서 만났다.

공부야말로 최고의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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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산꽃게의 간장게장은 짜지 않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라며 한 조각 권했다. 속이 꽉 찬 게장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밝은 주황색의 알이 유난히 선명했다. 한 입 베어 물자 갖은 양념이 꽃게와 한데 어우러져 깊은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는 “영업도 이렇게 깊은 맛이 나야 한다”며 얘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나 사장은 광주 인성고와 조선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공대를 간 이유는 간명했다.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다면 왜 하필 증권사를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입사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싱거운 문답이 끝난 뒤 나 사장의 놀랄 만한 분투기가 펼쳐졌다. 주식의 주자도 모르던 시절 지점 선배가 건네준 ‘주식투자의 매매전략’을 몇 차례나 통독하면서 저녁에는 자비로 회계학원을 다녔다.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5~1986년은 호황기였다. 증권주와 건설주가 수시로 상한가를 치면서 주식투자로 돈을 버는 사람이 많았다. “대신증권 영등포지점의 나재철을 찾아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목동에서도 투자자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저절로 영업이 되는 시기였지만 나 사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투자기법을 배우고 익혔다. 1990년에는 여의도의 한 투자자문사가 개설한 ‘PC를 활용한 새로운 주식분석기법’ 강좌를 자비 100만원을 들여 수강했다. 당시 대리이던 나 사장의 월급보다 많은 돈이었다. 나 사장은 “‘최신 주가 분석’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상승국면, 횡보국면, 하락국면별로 가장 적합한 투자 기법인 뉴럴네트워크(신경망분석)를 배웠다”며 “지금으로 따지면 ‘로보어드바이저’ 수준의 최신 프로그램으로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무엇이 투자자를 움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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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 수완, 양 박자를 다 갖춘 나 사장에게도 외환위기는 힘겨운 시절이었다. 주식시장이 공포에 짓눌려 패닉에 빠진 1997년 말, 그는 요직 중의 요직인 서울 강남지점장의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처음에 인사 발령을 받고 너무 막막했어요. 주식투자로 손실을 본 투자자의 항의가 빗발을 치는 가운데 일부 투자자가 소송을 걸어 영업 기반이 무너진 지점이었거든요.”

노릇노릇 구운 우럭찜과 붉은 빛이 선명한 대하구이가 상에 올랐다. 쫄깃한 우럭의 식감과 고소한 대하의 향이 입안에 퍼졌다. 나 사장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달라진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좋은 인재를 찾아 나섰다.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린 외환위기를 견디며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에 새로 눈을 떴다고 한다. 2000년 수백만원의 자비를 들여 연세대 상남경영원 리스크매니지먼트 과정(1기)을 수강한 이유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 출신에게 강남지점의 한 층을 헐어 투자자문 사무실을 내줬다. 많은 자산가를 개인 고객으로 두고 있는 그와 협력하면 지점의 영업 기반이 확충될 것으로 봤다. “우리가 받을 수수료를 깎아주기로 하고 그분의 고객을 우리 지점에 유치했죠.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연예인 소설가 등 이른바 큰손 투자자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자산이 쌓이기 시작하니 예탁금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도 상당했죠.” 몇 년 뒤 그 투자자문사는 강남지점을 떠났지만 투자자들은 그대로 남았다. 나 사장은 강남지점장 재직 7년간 전국 1등 자리를 4년이나 차지했다.

2004년 강서지역본부장으로 임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강남지역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회사 내 6개 지역본부 중 1등을 계속 도맡아 했다. 나 사장은 영업력의 요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객으로 하여금 ‘날 위해 밤낮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물론 그 배경엔 강력한 승부근성이 있었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볼 때마다 ‘최고가 되자’고 다짐했다는 것.

어느 정도 상 차림이 마무리되자 나 사장은 매끈한 모양의 막걸리 한 병을 꺼냈다. 울산지역 전통 막걸리인 ‘복순도가(福順都家) 손막걸리’였다. 톡 쏘는 탄산의 강한 맛으로 시작해 부드러운 누룩의 진한 향내로 끝났다. 다른 막걸리보다 덜 달면서 새콤한 맛이 입맛을 사로잡았다. 나 사장은 “얼마전 울산지점을 방문했을 때 지점 직원들과 단합 회식을 하며 마셨는데 너무 맛있었다”며 잔을 권했다.

올 연말 ‘新명동시대’ 열겠다

게 껍데기에 밥 한 숟가락을 넣어 맛있게 비벼 먹다 보니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흘렀다. 조금 생각해 보고 대답하라며 2개의 질문을 던졌다. 울산 막걸리는 인기가 좋았다. 훈훈한 취기가 기분 좋게 밀려왔다.

첫 번째는 “과연 투자는 무엇인가”였다. 나 사장의 대답은 “무조건 리스크 관리”라고 잘라 말했다. 30여년 증권맨 생활의 최종 결론이라고도 했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리스크 관리를 못하면 언젠가 낭패를 겪습니다. 욕심을 줄이고 자중할 줄 알아야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유례 없는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는 청년 실업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냐”는 것이었다. 나 사장은 우선 열등감 내지는 열패감에 빠지지 말라고 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음지가 내일의 양지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세상사의 흐름입니다. 한때 세계 1위였던 조선업도 지금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당장 힘들다고 기 죽지 말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차분히 해나가면 언젠가 기회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력하는 사람들 곁에는 도움의 손길이 늘어난다는 사실도 경험적으로 들려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저 또한 회사를 다니면서 고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때 그들을 돕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분들이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준 것 같습니다. ‘빚진 자의 마음’으로 더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대신증권은 올 연말께 여의도를 떠나 명동의 새 사옥으로 이사한다. 나 사장은 “역사적으로 돈의 중심은 명동”이라며 “처음 회사가 출발한 명동에서 달라진 대신증권의 ‘명동시대’를 열겠다”고 말한 뒤 잔을 비웠다.

스키마니아 나재철 사장, 기타연주·미술에도 관심

나재철 사장은 스키, 그림 그리기, 기타 연주 등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다. 1990년대 초 스키를 배운 뒤 매년 겨울이면 스키장을 찾는다. 지난 시즌에는 스무 번 넘게 다녀왔다고 한다. 스키강사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모굴스키 등 고난도 기술을 구사할 정도로 실력을 갖췄다.

독학으로 배운 기타도 수준급이다. 대학생 시절 대학가요제 예선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중·고교 시절에는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할 정도로 그림에도 소질을 보였다. 그는 “은퇴 후에 그림을 다시 배워볼 생각”이라고 했다. 몇 년 전 목돈을 모아 장만하고도 집에 ‘얌전히 모셔놓은’ 일렉트릭 기타의 포장을 뜯는 상상만 해도 즐겁다고 한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나재철 대신증권 사장 "투자기법 공부에 아낌없이 투자…가는 곳마다 '전국 1등' 만들었죠"
나재철 사장의 단골집 서산꽃게
알 꽉 찬 충남 서산 꽃게로 만든 간장게장…대하구이도 일품


[한경과 맛있는 만남] 나재철 대신증권 사장 "투자기법 공부에 아낌없이 투자…가는 곳마다 '전국 1등' 만들었죠"
서산꽃게는 2010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문을 연 간장게장 전문점이다.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 3번 출구로 나와 서울가든호텔을 바라보고 걷다가 KEB하나은행 마포역지점 빌딩 오른쪽 작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왼쪽에 간판이 보인다. 마포 공덕 인근 직장인이 주고객이며, 여의도에서도 증권사 직원 등이 많이 찾는다.

주메뉴는 간장게장 정식이다. 충남 서산에서 가져온 알이 꽉 찬 꽃게로 매일 간장게장을 담근다. 조기구이, 묵은지꽁치찌개, 어리굴젓, 동그랑땡, 계란탕 등 밑반찬이 다양하게 나온다. 우럭찜, 대하구이, 간자미회무침 등을 추가로 주문할 수 있다.

점심시간에는 오전 11시50분~오후 3시, 저녁시간엔 오후 6~9시에영업한다. (02)719-9693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