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너희가 '총선민심'을 아느냐
“이웃이 일자리를 잃으면 경기침체, 당신이 일자리를 잃으면 불황, 카터가 실직하면 경기회복을 뜻한다.”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 후보는 경쟁자였던 지미 카터 대통령을 이렇게 공격했다.

레이건은 선거에서 승리했고, 재담(才談)도 현실로 입증했다. 8년 재임 기간 동안 2000만개 가까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2% 안팎이던 경제성장률도 연평균 4%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감세(減稅)와 규제 완화로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공급중심 경제정책(supply-side economics)’이 먹힌 덕분이었다.

재정 투입 등 수요를 부추겨 일자리를 늘리려다가 실패한 카터 행정부와 대조를 이뤘다. 그의 이름을 딴 ‘레이거노믹스’는 시장 개입이 아닌 ‘조장(助長)’이 왜 옳은 처방인지를 설명해주는 고전적인 사례가 됐다. 최근 중국 정부에서 도입을 추진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인 중국에서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도입하겠다니, 국제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요즘 한국의 경제 상황이 36년 전 미국을 떠올리게 한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0.4%로 2분기 연속 0%대로 추락했다. 설비투자는 전기 대비 5.9%나 급감했다. 미래의 성장을 가늠하게 해주는 대표적 지표인 설비투자의 마이너스 추락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청년실업률이 1997년 외환위기 수준인 12.5%로까지 치솟아 있는 터다.

이런 경제난국을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과 비교해 한국의 투자감소율이 단연 1위다. ‘경제민주화’에 맞춰 개정된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등이 기업들의 투자 의지를 꺾고 있다. 척박한 기업생태계에서 ‘성공신화’를 써낸 카카오가 총자산 5조원이 넘게 성장했다는 이유로 대기업 규제를 받게 돼 투자 발목을 잡힌 게 단적인 예다.

4·13 총선 결과는 이런 지경에까지 경제를 몰고 온 1차 책임을 정부와 여당에 물었다. 그렇다고 야당들은 그런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여야 간 토론과 합의를 요구하는 국회선진화법 체제에서 야당이 면죄부를 받을 길은 없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활성화법안들을 이렇다 할 토론의 기회조차 없이 봉쇄해 온 게 야당이다.

그런 야당의 원내대표가 선거 결과에 대해 내놓은 해석이 불안하다.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경제활성화에 대해 국민들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민의 뜻을 바탕으로 정부·여당발(發) 경제활성화법을 모조리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

그러면서 ‘민생경제’를 살릴 대표적인 응급요법으로 제시한 게 ‘청년고용촉진특별법’ 도입이다. 공공기관의 청년 의무고용 비율을 정원의 3%에서 5%로 높이고, 민간 대기업도 정원의 3%에 해당하는 청년을 의무 고용하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무리한 규제가 빚은 투자 위축과 일자리 감소를 더 황당한 개입으로 풀겠다면서 ‘국민의 뜻’을 갖다 붙여선 안 된다. 기업들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는 고용 의무화는 경영 악화로 이어지고, 일자리 기반 자체를 날려 버릴 게 뻔하다.

‘민생경제를 살리라는 게 국민의 뜻’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경제활성화 대안들에 대해 진지한 논의의 장(場)부터 마련하는 게 순서다. 노동개혁 4법 가운데 파견근로자법은 “비정규직을 늘릴 뿐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는 게 야당의 반대 논거다. 반대로 “파견 규제만 완화해도 9만여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중소기업 인력 부족의 60%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서비스산업 발전법이 시행되면 2030년까지 서비스분야 일자리가 최대 69만개 생길 것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야당은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보건 및 의료분야 지원조항을 제외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어느 당에도 과반을 허락하지 않은 총선 결과는 3당이 제대로 된 숙의(熟議)정치를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게 옳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진정한 정치’를 복원하라는 게 총선 민심이지 않을까.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