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그제 산업은행에 채권단 공동관리 신청서를 제출했다가 보완요구를 받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 포기각서와 41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까지 냈는데도 ‘일단 보류’ 판정을 받은 것이다. 채권단은 앞서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현정은 현대상선 회장처럼 조 회장이나 최은영 전 회장이 사재출연을 해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기업 구조조정이 논의될 때마다 대주주는 무한책임에 노출돼왔다. 사재출연을 해서라도 정상화 의지를 보이라는 압박에 대주주들의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윤석금 웅진 회장처럼 법원이 경영을 통해 개선해볼 기회를 주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사례다. 대개는 대주주가 모든 걸 내놓고도 경영정상화에 실패하면, 배임 횡령 사기 등 온갖 혐의로 피소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아왔다. 구조조정이 논의될 때마다 대주주의 선택과 행동에 주목하게 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옳다는 행동준칙은 우리 사회에 정립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최은영 전 회장처럼 한때 대주주였던 책임을 잊고 보유지분을 현금화하는 일도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나쁜 사례가 반(反)기업 정서를 건드리게 되고, 여론은 대주주의 무한책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휩쓸려가는 것이다.

조양호 한진 회장은 2014년 경영난을 겪고 있는 제수(최은영 전 회장)의 기업을 떠안았다. 관련된 기업이니 맡아 달라는 정부의 강권이 있었음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동안 대한항공 등 계열사까지 나서 1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정상화에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이런 기업에 대고 또 사재출연을 하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정부요 정치권이요 언론인 것이다. 훈수꾼들은 쉽게 얘기하지만 해당 회사로서는 백척간두에서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

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우리는 대주주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에 합의된 원칙이나 행동준칙이 없다. 이런 상황이니 대기업 구조조정이 논의될 때마다 한바탕 ‘굿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