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스타트업 리포트] 치킨집 차릴 바엔 '스마트 농장'에 도전하라
“앞으로 20년, 30년 동안 가장 유망한 산업은 농업이다.” “치킨집 차리는 것보다 농사가 훨씬 경쟁력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최근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D.CAMP) 주최로 열린 ‘애그리테크 디파티’에서는 평소 잘 듣지 못하던 생소한 얘기들이 쏟아졌다. 서울 선릉로 디캠프 다목적홀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농업에 정보기술(IT)을 결합해 혁신을 꾀하고 있는 ‘애그리테크(agri-tech)’ 분야 창업자들과 농림축산식품부, 서울시, 농업기술실용화재단,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의 관계자 150여명이 참석했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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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는 농업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농업이 유망하다거나 미래 성장동력이라고 하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필자 역시 2년 전 듀폰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농업을 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난 2월 중국 화궁(化工)그룹이 스위스 농약 비료 제조사 신젠타를 430억달러(약 50조원)나 주고 인수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놀랍기만 했다.

일본 농업기업 스프레드가 운영하는 ‘로봇농장’ 기사를 읽은 뒤에야 생각이 바뀌었다. 스프레드는 상추농장을 자동화해 내년에 수확량을 2배로 늘리고 5년 뒤엔 다시 10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 농장에서는 로봇이 사람 일을 대신한다. 물을 뿌리고, 솎아내고, 옮겨 심고, 수확하는 일을 모두 로봇이 한다. 엄밀히 말하면 ‘상추농장’이 아니라 ‘상추공장’이다. 자동화 결과 인건비는 반으로 줄었고, 수확은 2배로 늘었다.

실리콘밸리 투자자인 메리 미커는 2012년 상반기 인터넷 트렌드 보고서에서 “거의 모든 것을 재상상하라”고 했다.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만큼 다시 상상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는 의미다. 상추나 딸기를 재배하는 도시 근교 비닐하우스를 재상상하면 스프레드의 로봇농장이 된다. 도심 건물 안에서 딸기와 상추를 재배할 수 있다면 강풍에 비닐하우스가 날아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스마트 팜(smart farm)’이란 용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그러나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 습도 조명 등을 스마트폰으로 조절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농업과 IT의 결합에 의한 혁신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농업인은 IT를 모르고 IT인은 농업을 몰라 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애그리테크 디파티에서는 농업 분야에서도 다양하게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농부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농사펀드’, 스마트 화분을 시발로 도시농업 기술을 개발하는 ‘엔씽’, 농촌 구인자와 도시 구직자를 이어주는 일자리 플랫폼 ‘푸마시’, 장미 농장에 아쿠아포닉스 농법을 적용해 2년 만에 연간 매출을 7000만원에서 19억원으로 늘린 ‘만나씨에이’ 등 눈길을 끄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많았다. 발표가 끝난 뒤 참석자들과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농업을 아는 분과 IT를 아는 분이 자주 만나야 한다” “IT를 잘 아는 분이 농업 분야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 등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지금 한국 경제는 조선 해운 철강 등 전통 산업이 한계에 달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애그리테크와 같은 새로운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10년 뒤 한국에서 세계적인 농업기업이 많이 배출되길 기대한다.

■ 한경스타트업리포트

한국경제신문이 한국의 창업 생태계를 조망하는 ‘한경스타트업리포트’ 면을 신설해 매주 수요일자에 싣습니다. 한경스타트업리포트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신기술과 최신 트렌드를 비롯해 혁신 기업가들의 열띤 창업 현장을 취재해 보도합니다. 블로그 ‘광파리의 IT이야기’로 잘 알려진 김광현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센터장은 ‘광파리의 스타트업 톡톡’을 월 2회 연재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해 글로벌 웹툰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타파스미디어의 김창원 대표는 한 달에 한 번 ‘나의 실리콘밸리 창업 스토리’란 기명 칼럼으로 독자와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