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언의 데스크 시각] 기업 구조조정, 소리는 요란한데…
오늘 한진해운이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한다. 자력으로는 경영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채권단에 경영권을 넘기는 것이다. 지난달 현대상선이 자율협약에 들어간 지 거의 한 달 만이다. 1, 2위 국적 해운사가 나란히 채권단 관리를 받게 된다. 물론 한진해운이 내놓을 자구계획안 내용을 놓고 채권단과의 힘겨루기는 있을 수 있다.

글로벌 해운 강자들은 이 와중에 네 개인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을 두세 개로 재편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해운동맹들의 이런 이합집산에서 소외되는 분위기다. 회생하더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 해운업은 지금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위론만 넘치는 기업 구조조정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은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 손에 두 회사 운명이 달려 있다는 얘기다. 자율협약은 주채권은행이 구조조정 및 회생 방향을 정하고 다른 채권은행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 2월 취임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어깨는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 부실화에 대한 책임론이 여전한 가운데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을 맡아야 할 기업이 계속 늘고 있어서다. 이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과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으로서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개별 기업 구조조정을 넘어 조선업과 해운업에 대한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 과잉에다 중국의 추격 등을 고려할 때 조선·해운업에선 언 발에 오줌 누기식 개별 기업 구조조정만으로는 장기적인 생존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 회장은 지난달 간담회에서 “구조조정은 상시적이고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기업 구조조정에 최우선적으로 힘을 쏟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업 구조조정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해서다. 얼마 전까지 산업은행은 팬오션을 하림에 매각한 것을 지난 3년간 기업 구조조정의 최대 성과로 꼽아 왔다.

주력산업 경쟁력은 뒷걸음질

정부와 정치권은 4·13 총선이 끝나자마자 입을 맞춘 듯 강력한 기업 구조조정을 얘기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업 구조조정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실업 대책을 전제로 한 본질적이고 더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기업 하나하나의 구조조정 차원을 넘어 거시적인 구조개혁”을 주문했다.

구조조정 당위론이 갑자기 넘쳐나면서 한편에선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실 기업을 제대로 정리하고 산업 체질을 강화하는 구조조정은 힘들 것’이라는 회의론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도, 정치권도 말만 앞세울 뿐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조선·해운·철강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은 뒷걸음질치고 있는데 말만 무성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능력도, 배짱도, 돈도 모자란 산업은행에 구조조정 역할을 떠넘기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대로 된 조선·해운 구조조정을 하면 실업자가 양산되고 주식이 휴지 조각으로 변할 텐데, 과연 누가 이 일을 진행하고 책임질 것이냐에 정부가 됐건 정치권이 됐건 답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김수언 금융부장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