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망원경과 현미경
아름다운 여성이 해변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카메라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점점 높은 곳으로 향한다. 대기권을 지나고 지구 궤도를 지나 태양계 밖으로 나간다. 은하 사이를 가르며 끝없는 우주 공간으로 뻗어간다. 암흑 속의 점들이 수없이 명멸하는 광대무변의 세계가 이어진다. 카메라가 다시 돌아와 눈동자 속을 비춘다. 망막과 혈관을 지나 세포와 DNA, 분자와 원자의 핵까지….

첨단 과학영상의 한 장면이다. 우주의 극대점과 인체의 극소점이 닮았다. 광학혁명의 대명사인 망원경과 현미경의 원리도 비슷하다. 둘 다 렌즈를 활용한 발명품이다. 안경 제조업자들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됐다. 그 덕분에 태양계 바깥까지 볼 수 있게 됐고 세포와 바이러스, 백신 연구까지 앞당길 수 있었다.

현미경은 네덜란드 안경사 얀센이 처음 만들었다. 1590년 어느 날 그는 렌즈 두 개가 겹쳐진 상태에서 밑에 있던 글자가 커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두 개의 볼록 렌즈로 만든 최초의 현미경은 사물을 10배 정도 확대해 볼 수 있었다. 이후 물 한 방울 속에 무수한 미생물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665년 영국 과학자 로버트 훅이 세포 관찰에 성공한 것도 현미경 덕분이었다.

작은 것을 확대해 보면 본연의 구조를 알 수 있다. 나뭇잎에서 식물의 호흡에 필요한 공변세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는 획기적인 발명품을 낳아 연잎의 방수원리를 이용한 옷까지 선보였다. 강철보다 단단한 탄소나노튜브도 개발했다.

망원경을 만든 사람도 네덜란드 안경사다. 1608년이었으니 현미경보다 18년 늦었다. 2년 뒤 갈릴레이가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조합한 망원경을 제작해 달과 목성 관측에 성공했다. 이후 볼록렌즈만을 활용한 케플러식 망원경과 렌즈 대신 거울을 사용한 뉴턴식 반사망원경이 잇달아 등장했다.

1990년에는 지구 밖에서 별을 관측하는 허블망원경이 우주로 떠났다. 2009년 태양계 외부 생명체를 찾기 위해 출발한 케플러 망원경에 이어 내년에 테스 망원경, 2018년엔 제임스웹 망원경이 장도에 오른다. 마침 우주에서 26번째 생일을 맞는 허블은 거대한 비누거품 같은 ‘버블성운’의 환상적인 모습을 보내왔다.

인류 발명의 ‘위대한 렌즈’ 앞에 새삼 나를 비춰보게 된다. ‘곤충의 눈’으로 발밑을 보고 ‘새의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라고 했던가. 현미경으로 보면 모두 힘들게 사는 것 같고, 망원경으로 보면 다 잘 사는 것 같은 세상사 이치도 함께 생각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