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숨은 경제 이야기] 기부는 본래 이타적인 행위일까?
돈과 자본이 중시되는 현시대의 삭막함 속에서 기부에 관한 이야기는 훈훈한 미담으로 들려온다. 기업체의 정기적인 기부활동 및 사회적 약자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기여활동에 대한 이야기로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산가가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금 금액이 매우 방대해서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기부자의 형편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보다 나은 쓰임을 위해 선뜻 기부금을 전달하는 사례로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 본연의 따뜻한 감성을 자극하는 이러한 기부활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사실 기부라는 행위는 자선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돈이나 재화 및 서비스를 대가 없이 제공하는 것을 뜻하므로 어느 누가 이를 먼저 시행했는지는 명확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사회체제 내에서 규정된 형태로 이루어진 기부활동은 매우 오래 전부터 시행돼 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기부활동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리스에는 ‘부유한 시민의 공적인 의무’라는 것이 있었다. 사회 고위층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인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해당한 이 의무는 공공복지를 위해 사용될 부유층의 기부금을 뜻하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부유한 시민들이 제공한 기부금이 주로 축제를 위해 쓰여졌다는 것이다. 당시 아테네의 축제는 매우 빈번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비용을 필요로 했다. 흥을 즐기는 그리스인에게 축제는 매우 중요했고, 축제라는 사회적 공공서비스를 담당하는 것은 부유한 시민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축제를 위한 음식이나 음악단 준비 비용부터 평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달리기, 노래, 춤, 항해 등의 활동을 지원했다.

그런데 과연 그리스의 부자들은 오직 ‘이타심’과 ‘봉사정신’만으로 거대금액의 축제비용을 제공했을까? 오늘날 기부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본 질문을 적용해봐도 마찬가지의 의구심이 든다. 아무리 돈이 많고, 마음이 넓다 하더라도 합리적인 경제주체가 오직 감성적인 판단에 의해서만 기부행위를 선택한다고 이해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경제학에서는 기부를 어려운 사람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의 효용을 증가시키는 행위로 보고 있다. 즉, 기부라는 행위를 함으로써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에 기부를 한다고 본다. 경제적 인센티브란 보상이나 처벌 가능성 등 사람이 행동하도록 만드는 경제적인 무언가를 말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어떤 행동과 선택을 할 때 이에 따른 이득과 비용을 비교해 의사결정을 함으로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

기부 행위를 경제적으로 분석한 연구 중에는 기부를 공공재의 성격으로 설명한 사례가 있다. 기부를 통해 제공된 기부금이나 서비스 등은 자선을 받은 수혜자에 의해 사적인 재화로 소비되지만, 이 행위를 통한 기쁨을 기부자도 함께 느낀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부는 수혜자의 효용뿐만 아니라 기부자의 효용까지 증가시킨다는 특징이 있어 공공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기부를 통해 자선을 베풀며 느끼는 뿌듯함 외에도 기부행위에 대한 자부심, 소속 집단에서의 인정 등 사회적 동기 또한 기부자에게 경제적 유인이 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동기에 의해 기부한다면 사실상 그 행위는 순수한 이타심에서 기인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기부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테네의 법원이나 집회에서 자신이 수행한 공적 의무에 대해 자랑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리스의 부자들 역시 사회에 재정적 기부를 함으로써 이에 상응하는 명예를 얻는 경제적 유인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기부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기부에 대한 새로운 경제적 유인도 생겨나고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기부금 세액공제’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방편으로 기부 참여자에게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기부를 행하는 법인은 회사업무와 관련된 비용으로 인정해주며 개인의 경우에는 연간 2000만원 이하 기부금에 대해 15%, 초과분은 30%의 비율로 세금을 공제해준다. 본 제도는 기부자와 기부단체의 공익성 수준 등 일정 기준을 통해 공제한도를 차등 적용해서 제공한다. 그렇기에 공제금액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기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기부로 인한 내면적, 사회적 인센티브 외에 세금공제라는 금전적 인센티브 역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또한 기부활동 참여자가 확대되고 기부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기부에 대한 경제적 유인의 형태는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는 1990년대 말까지 기부란 ‘가진 자’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만연했다. 이러한 인식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전 국민적으로 ‘금모으기 운동’이 시행되면서 점차 변화했다. 국민이 십시일반 모금활동에 참여하여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됐던 경험은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큰 힘이 됐다. 2000년에는 처음으로 개인 기부금 비중이 법인 기부금을 넘어섰고, 최근에는 기부에 참여한 사람이 경제활동인구 5명 중 1명에 해당할 정도로 기부 참여의 범위가 확대됐다.

점차 다양한 사람들이 기부활동에 참여하다보니 기부 방법 역시 다변화돼 기부는 돈이라는 인식이 깨지고 있다. 이전에는 단순히 금전적인 도움을 통해 기부를 했다면, 최근에는 자원봉사나 자신의 역량을 어려운 사람과 나누며 사회에 기여하는 재능기부 등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전에는 기부금 전달을 통해 단순히 심적 뿌듯함이나 자긍심 등을 기대했다면 최근에는 구체적인 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자신의 역량 개발 등 다양한 경제적 유인이 추가되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기부라는 행위가 순수하게 수혜자의 입장만을 생각해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쩌면 조금 씁쓸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부자가 경제적 유인에 따라 합리적으로 기부를 행함으로써 기부자와 수혜자 모두 자신의 효용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기분 좋은 사실이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기부문화가 우리사회에 따뜻하게 자리 잡는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김민정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