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추리닝
적당히 낡고 후줄근해 보이면서도 편안한 일상복, 집에서 뒹굴거나 슬리퍼 차림으로 구멍가게를 오갈 때 많이 입은 동네 패션, 고시생이나 백수들이 라면 끓여먹는 장면에 자주 등장하는 ‘백수룩’. 추리닝이라면 촌스러운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삼선(三線) 줄무늬도 ‘아줌마 몸뻬’와 요란한 꽃블라우스 비슷하다.

추리닝은 어감과 달리 국어 사전에 있는 표준어다. 영어 트레이닝(training)이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는 등 여러 설이 분분하다. 원래는 스포츠 경기 전 연습 때 입는 옷의 통칭이었다. 가볍고 유연한 소재로 만들었고, 경기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체온을 보호하도록 했다.

‘삼선 무늬’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상징 로고다. 독일 구두수선공 아디 다슬러(Adi Dassler)가 형과 함께 신발공장을 시작한 게 1924년. 결정적인 기회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육상 스파이크를 들고 메달 후보 제시 오언스를 찾아가 신어달라고 설득했다. 오언스가 4개의 금메달을 휩쓸자 대박 행진이 이어졌다.

2차대전 후 형과 갈등을 빚은 그는 1948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아디다스(Adidas)를 별도로 세웠다. 이후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전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을 석권했다. 형 루디 다슬러(Rudi Dassler)도 같은 해 루다(Ruda)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푸마(Puma)가 됐다. 독일 형제가 세계를 쥐락펴락한 셈이다. 미국에서는 1964년 필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이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한 뒤 1972년 나이키(NIKE)로 이름을 바꾸며 승승장구했다.

추리닝의 인기는 운동 경기장을 넘어 일상으로 확산됐다. 기능이 세분화되고 형태도 다양해졌다. 타월 소재 추리닝을 입고 다닌 패리스 힐튼 등 스타들의 운동복 차림이 자주 노출되면서 대중의 인식 역시 바뀌었다. 요즘은 뉴욕 지하철이나 슈퍼마켓, 카페에서도 트레이닝복이 흔하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신감도 함께 작용한 것 같다.

엊그제 아디다스 차림으로 전당대회 연설을 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어떤가. 지난해 교황과 프랑스 대통령을 만날 때도 그 차림이었다. 군복과 시가의 강렬한 이미지를 내세우던 그가 왜 이러는 걸까. 미국과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거부감, 엇나간 우월감 과시 등 해석은 갖가지다. 하지만 늙은 혁명가의 이미지 관리법이라면 영 어울리지 않는다. 타임의 ‘최악 옷차림 지도자’에 꼽히고도 저러니, 아디다스 또한 민망할 노릇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