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조선·해운 구조조정, 죽어야 산다
조선과 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이 여전히 삐걱대는 모양이다. 경제부총리는 총선이 끝나자 구조조정에 강한 드라이브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주무부처는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고 채권단은 눈치만 살핀다고 한다.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통에 부실은 이미 눈덩이다. 구조조정의 이유나 목적은 온데간데없다.

모든 걸 경기 탓으로 돌린다. 경기만 좋아지면 만사형통인데 무슨 구조조정이냐는 반발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로 경기만 나아지면 조선과 해운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경기가 개선될 조짐도 없지만 좋아진들 한국이 혜택 볼 일은 없다. 문제의 핵심이 경쟁력의 상실인 탓이다. 한국의 조선과 해운산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중국 탓도 아니고, 노조 탓도 아니다. 모든 게 실력이 없어 벌어진 일이다.

경쟁력이 얼마나 훼손됐기에 회생 불능을 운운하느냐는 사람들이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인건비 경쟁력만 믿고 맞춤형 범용선 카탈로그를 들고 다니며 손쉬운 영업만 해온 것이 한국의 조선산업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배는 건조한 적이 없다. 그래도 고속 성장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2008년 금융위기 때다. 상선 발주가 줄어들고 그나마도 중국이 싹쓸이해 갔다. 하는 수 없이 뛰어든 분야가 드릴십, 리그선, 반잠수식 시추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다. 그런데 실력이 뒷받침되질 않았다. 설계 오작과 공정 차질이 줄을 이었다. 납기를 못 맞춰 비용은 한없이 불어났고 선주들은 아예 발주를 취소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계 1위 산업은 그렇게 망가졌다.

한때 잘나가긴 해운산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남들이 미래를 준비할 때 현실에 안주하고 말았다. 글로벌 선사들의 주력 컨테이너선은 1만4000TEU를 넘어 1만7000~2만TEU급으로 옮겨 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선사는 여태 5000~8000TEU가 주력선이다. 효율은 말해 뭐하겠는가. 조선과 해운이 말 그대로 ‘살아도 못 사는’ 이유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며칠 전 한 강연회에서 현대-삼성-대우 3대 조선사를 한두 개로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윤 전 장관은 모르긴 몰라도 두 개보다는 하나에 힘을 줬을 것 같다. 군소 조선사는 말할 것도 없다. 그 정도 각오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경쟁력 회복은 불가능하다. 도크 자체를 파묻고 그곳에 테마파크를 세워 고용을 유지하는 식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다.

해운도 다르지 않다. 컨테이너선사 두 곳 모두 경쟁력을 잃었다. 시장논리로만 따지만 두 곳 모두 존재할 수 없는 회사다. 하지만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국적선사가 없으면 다른 산업의 경쟁력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다. 정부는 선박펀드를 결성해 1만4000TEU급 배를 새로 지어 구조조정을 마친 회사에 빌려주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그런 배가 하루아침에 건조되겠는가. 용선료 협상 여부에 따라 연명 기간이 늘어나느냐 법정관리에 들어가느냐는 화급을 다투는 실정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합쳐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것이 정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법이다. 그 다음 1만4000TEU급 선박을 수혈받아 대형 선단을 꾸미는 게 정답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서둘러야 한다. 때가 있는 법이다. 조선은 벌써 일감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부실 군소 조선사들은 어떻게 채권단으로부터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받았는지 해외에 나가 저가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출혈 경쟁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선주들만 신났다. 국책은행의 부실 조선사 지원은 도를 넘었다. 좀비 탓에 힘들게 버티고 있는 정상 기업까지 좀비가 될 판이다.

해운은 글로벌 동맹이 새롭게 망을 짜면서 도움이 안 되는 한국 해운사들을 배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초대형 선박으로 무장해도 동맹에서 빠지면 모든 게 헛일이 된다.

지금 구조로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기업별 구조조정은 한계에 부딪친 지 오래다. 산업 자체를 흔들어야 한다. 없애고 합치고 뼈를 깎아야 살아남는다. 사즉생(死則生)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