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거대 야당들의 거침없는 활보를 보면서 국제신용평가사들의 평가를 돌아보게 된다.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의 소위 ‘보수정권 8년 청문회와 국정조사’ 주장이 대표적이다. 더민주도 동조하니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한바탕 정쟁부터 벌어질 판이다. 유감스럽게도 국제신평사들은 족집게처럼 한국 정치의 현실과 수준을 벌써 내다보고 있다.

무디스는 여소야대가 확정되자마자 “한국의 국가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발표문을 냈다. ‘한국 국회는 종종 교착상태에 빠졌다, 올해 초엔 필리버스터도 있었다, 대선 전까지 구조개혁 입법이 지연되면 정부 효율성이 약화될 것이다’는 지적은 뼈아픈 충고요, 무서운 경고였다. 무디스는 “경제활성화를 위한 노동개혁이 제안됐지만 정치적 반대에 직면한 상태”라며 국회 통과가 더 힘들어졌다고도 분석했다. 피치도 그 다음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구조개혁 실행이 어려워졌다”는 진단을 내놨다. 국제신평사들이 실제로 등급을 내리기라도 하면 우리 기업의 국제금융 비용 증가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두 기관 모두 구조개혁 지연을 한국적 정치 리스크의 핵심으로 지적한 셈이다. 야당이 대승한 이번 총선 전에도 그랬다. 노조가 움직이고 정치가 개입하면 어떤 구조개혁도 그걸로 끝이었다. 경제논리에 입각해야 할 산업구조조정도 채권단과 기업 판단에 맡겨지지 않았다. 거대 야당들이 당장은 청문회, 세월호 같은 정치색 짙은 안건부터 손대고 있지만 기업 구조조정에는 또 어떻게 간섭할지 우려된다.

연초 3.0%였던 한은의 올해 성장 전망치가 석 달 만인 어제 2.8%로 수정 발표될 정도로 경제가 가라앉고 있지만 경제만도 아니다. 북한의 5차 핵실험도 시간문제 같은 분위기다. 야당들이 수권 정당의 면모를 보이려면 무모한 핵도발도 최대한 사전에 막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전처럼 내도 그만 안 내도 그만의 형식적 사후 규탄성명 정도로는 더 이상 안 된다. 원내 제1당이니 의장직부터 내놓으라기 전에 취해야 할 책무다. ‘야대(野大) 리스크’란 신평사 경고를 정치는 듣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