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맥주보이
미국 메이저리그(MLB)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필드에는 ‘오페라맨’이라는 유명인사가 있다. 22년 경력의 맥주판매원 하워드 그리어(63)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캔맥주를 팔면서 중후한 바리톤으로 “비~~~~어 히어, 쿠~~~~어스 라이트”라고 외치면 마치 노래하듯 들린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부시스타디움은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안호이저부시가 스폰서다. 한국과 일본에서 ‘끝판대장’이던 오승환은 첫 승을 따낸 뒤 팀 동료들이 퍼붓는 맥주로 샤워를 했다.

메이저리그는 이렇듯 맥주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된다. 30개 구단이 로고를 넣은 전용 맥주잔을 경쟁적으로 판매한다. 밀워키는 독일 이민자가 많은 맥주산지의 특징에 맞춰 팀명이 아예 ‘양조업자(Brewers)’이고 홈구장 밀러파크는 밀러 맥주에서 따왔다.

흔히 “야구는 맥주를 부르고, 맥주는 야구를 부른다”고 한다. 더운 날씨에 푸른 잔디와 백구(白球), 피말리는 명승부에 환호하다 보면 절로 맥주가 당긴다. MLB에는 구장마다 ‘beer vendor’라는 이동 맥주판매원이 활동한다. 맥주와 핫도그는 한국의 치맥(치킨+맥주)만큼 인기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비르걸(beer girl)’로 불리는 젊은 여성들이 맥주 판매를 담당한다. 도쿄돔의 경우 160명의 판매원이 100잔 안팎씩 총 1만5000잔을 판다. 이들은 맥주통을 메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손님에게 무릎을 꿇고 맥주를 건넨다. 한데 맥주통 무게가 25㎏에 달한다니 장난이 아니다.

한국 야구장에도 ‘맥주보이’ 또는 ‘맥돌이’로 불리는 감초가 있다. 어디든 달려가 물총처럼 생긴 호스로 시원한 생맥주를 즉석에서 쏴준다. 하지만 15㎏짜리 맥주통을 메고 한여름 땡볕 아래 계단을 뛰어다니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래선지 맥주보이들이 최고로 꼽는 투수는 ‘경기를 빨리 끝내는 투수’라고 한다.

야구장 명물인 맥주보이가 퇴출된다는 소식이다.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서 맥주를 판매하는 것은 주세법상 위법이고 청소년 음주 우려가 있다고 국세청과 식약처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꼭 금지해야 하는지. 그런 식이면 포장마차나 대학 축제 등의 술 판매도 금지해야 할 것이다. 미성년자 음주는 미국처럼 신분 확인을 강화하면 그만이다. 기차에서도 파는 맥주를 야구장이라고 못 팔 이유가 있는가.

1990년대만 해도 야구장 음주사고가 잦았다. 그러나 맥주 판매를 허용한 이후엔 오히려 사고가 거의 없다. 관중 의식은 선진화됐는데 공무원의 규제만능주의는 변한 게 없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