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많은 자동차마니아들이 터보 엔진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다. 특히 고성능 스포츠카의 경우 고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의 '로망'을 거론하며, 조금 과장하자면 터보 엔진이 대세가 된 현실을 개탄하기도 한다. 답답한 터보 렉(터보 엔진이 제성능을 내기까지 휴지기간), 과장된 반응과 부자연스러운 사운드 등이 터보 엔진을 싫어하는 이유다.

그래서 일부는 최근 포르쉐가 스포츠카 911에 터보 엔진을 확대 적용한 걸 '배신'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포르쉐의 브랜드 역사를 들여다보면 터보 엔진에 얼마나 오랜 시간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최초의 포르쉐 터보가 등장한 건 1977년이다. 이후 포르쉐가 내놓은 양산형 제품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내는 차가 911 터보S라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형 911 터보S를 통해 포르쉐의 농익은 터보기술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체험했다.

▲스타일
신형 911 터보S의 크기는 길이 4,507㎜, 너비 1,880㎜, 높이 1,294㎜, 휠베이스 2,450㎜다. 차고는 낮고 어깨선이 넓은 전형적인 스포츠카 비례다.

전면부엔 커다란 사이드 에어 인테이크와 에어 블레이드가 자리잡았다. 엔진에 충분한 양의 공기를 공급하면서 냉각과 공기역학 성능을 고려한 배치다. 특유의 둥근 헤드 램프는 듀얼-라인 포지셔닝 램프와 방향지시등을 통합한 신형으로 바꿨다.

측면은 유려하면서도 역동적인 실루엣을 지녔다. 새로운 20인치 휠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7 듀얼 스포크 휠 디자인은 잘 다듬은 나뭇가지를 연상케 한다. 휠 규격은 앞바퀴 9Jx20, 뒷바퀴 11.5Jx20으로 각각 245/35ZR 20과 305/30ZR 20 규격의 피렐리 초고성능 타이어 피제로를 장착했다.

후면부는 변화폭이 크다. 리어 램프는 3차원 형태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4점식 브레이크등과 은은한 빛을 내는 아우라 라이트를 결합했다. 양쪽에 위치한 블랙 크롬 트윈 테일파이프는 고성능을 짐작케 한다. 공력성능을 높이기 위해 장착한 리어 윙은 주행속도에 따라 높낮이가 조정되는 가변형으로, 운전자가 임의로 작동시킬 수도 있다.

외부의 디자인 요소들은 전반적으로 차의 너비를 강조하도록 배치했다. 실제 터보S는 911 전체 라인업 중 폭이 가장 넓다. 지면에 깔리는 듯한 자세를 표현하는 동시에 조향성능을 고려한 것.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갖춘 911 터보S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기능적인 실리도 얻는 설계다.

실내는 화려하면서도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포르쉐 계기판은 속도계가 아닌 엔진회전수 표시계가 가운데 있다. 센터페시아 상단엔 아날로그 방식의 시계가 위치한다. 키도 왼쪽에 꽂아야 한다. 모두 모터스포츠의 전통을 계승하는 요소다. 주행중 엔진 반응을 면밀히 살피고, 과거 시동을 거는 것까지 기록에 포함하던 시대에 1초라도 더 빨리 키를 꽂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성능
트윈터보를 장착한 6기통 3.8ℓ 미드십 엔진은 최고 580마력, 최대 76.5㎏·m의 성능을 자랑한다. 0→100㎞/h 도달시간은 2.9초에 불과하다. 구형 대비 최고출력은 20마력 상승했고, 0→100㎞/h 가속 기록은 0.2초 단축해 포르쉐 양산차 사상 최초로 2초대에 진입했다.

시승 전 성능 개선과 관련 포르쉐 본사 기술진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가솔린 엔진에서 가변 터빈 구조를 갖춘 2개의 터보차저를 사용하는 차는 911 터보가 유일하다. 여기에 911 터보S는 터보차저의 압축기 휠을 더 큰 부품으로 교체하고, 공기 공급을 늘리기 위해 하우징 설계를 변경했다. 같은 터보라도 터보S의 시스템에 기계적인 차이가 생긴 것도 신형이 처음이다. 직분사 시스템도 강화했다. 최고 분사압력의 경우 기존 140바에서 200바까지 올라갔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연료를 뿜어내 성능을 끌어올리고 배출가스는 줄일 수 있었다.

시승은 일반 공도와 서킷 등 두 구간으로 진행했다. 숙소에서 서킷까지 구간은 터보S의 성능을 발휘하기엔 힘들었다. 도심에서 고속도로 진입 전까진 시속 40~50㎞ 정도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서스펜션 세팅이 단단해 등과 허리를 통해 노면상태가 그대로 전달됐다. 그래도 통통 튄다기보다 어느 정도 충격을 상쇄해줘 피로감이 심하진 않았다. 차고가 낮아 생기는 문제도 서스펜션 조정 시스템으로 어느 정도 상쇄했다. 센터콘솔 위 버튼을 누르면 차 앞부분이 약 40㎜ 높아진다.

고속도로에 진입해서도 마음껏 달릴 상황은 아니었다. 인상적인 건 시속 100㎞ 정도까진 아이들링 수준의 낮은 엔진회전 영역으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또 차선이탈경고장치나 사각지대경고장치가 상당히 민감했다. 특히 사각지대경고장치의 경우 거의 차 한 대 간격 이상의 거리에서도 반응할 정도였다.

본격적인 주행은 키알라미 서킷에서 이뤄졌다. 포르쉐 남아공 법인이 최근 인수, 재개장 준비가 한창이다. 총 길이 약 4.5㎞에 14개의 코너를 가진 트랙으로, 높낮이 변화도 커 만만치 않은 코스다. 인스트럭터들은 성능을 충분히 느껴야 한다며 초반부터 빠르게 달릴 것을 재촉했다.

1㎞가 되지 않는 직선구간에서 시속 200㎞를 손쉽게 넘어선다. 순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속 페달에 힘을 싣자 후륜구동차가 아님에도 뒤에서 훅 미는 듯한 느낌이 왔다. 서킷 주행 초반엔 예상보다 강력한 가속성능 때문에 브레이크 포인트를 자꾸 놓쳤다. 너무 빠르게, 혹은 너무 느리게 브레이크를 잡다보니 코너에서 뒷바퀴가 비명을 질렀다.

요란했던 주행중에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던 건 차체를 추스르는 한계가 높았기 때문이다. 911 터보S는 4륜구동을 기본 적용한다. 전자식 차체제어장치도 적극 개입한다. 각 바퀴의 접지력을 섬세하게 조정하는 트랙션 매니지 컨트롤은 이질적인 느낌은 있지만 '차를 더 밀어붙여도 괜찮겠다'는 믿음을 준다.

어느 정도 코스에 익숙해지자 선행차가 한층 속도를 높인다. 연속 코너에서 조금 뒤쳐졌을 때 다이내믹 스포츠 부스트 기능을 활성화했다. 스티어링 휠 오른쪽 아래에 있는 이 버튼을 누르면 20초동안 폭발적인 가속성능을 발휘한다. 변속기 단수를 1단 정도 낮추면서 엔진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고, 점화시점이 바뀌며 터보 시스템의 부스트 압력을 높인다. 엔진 스로틀 밸브도 공기를 최대한 빨아들이며 더 많은 연료를 태운다. F1의 KERS와 작동원리는 다르지만 운전자가 느끼는 짜릿한 감성은 비슷할 것이다.

시트는 버킷 형태로, 스포츠 주행에서도 몸을 안정적으로 잡아준다. 몸을 꽉 죄기보다 잘 받쳐준다는 느낌이다. 쿠션도 적당해 주행 피로도가 적다.

▲총평
911 터보S는 터보 엔진의 강력한 성능을 유감없이 자랑하는 차다. 일반 공도와 서킷을 아우를 수 있는 실력을 동시에 갖췄다. 짧은 시승일정이 아쉬웠을 정도로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성능 이상의 강렬한 인상이 남았다. 터보랙은 사실상 느낄 수 없었고 배기음은 귀를 즐겁게 했다.

포르쉐에게 터보 엔진은 현실적인 제약을 피하는 차선책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매력적인 선택지다. 터보 엔진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사람도 911 터보S를 체험한다면 충분히 수긍할 만한 완성도를 갖췄다. 특히 신형 911에 적용한 다이내믹 스포츠 부스트 기능은 911 터보S에서 가장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최고의 성능을 갖춘 차가 순간 폭발적으로 잠재력을 드러내는 20초동안 게임을 하는 듯 비현실적인 짜릿함까지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터보 엔진은 성능뿐 아니라 친환경적인 부문에서도 최근 각광받고 있다. 국내외 브랜드를 불문하고 '다운사이징'을 표방하는 제품군엔 어김없이 터보 시스템이 들어간다. 보다 작은 배기량으로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다 연료효율도 높일 수 있어서다. 고성능 제품군 역시 '더 빠르고 더 멀리' 달리기 위해 터보를 채택한다. 자연흡기 엔진에 대한 애호가들의 향수 자체를 부정할 순 없지만 포르쉐가 보유한 터보기술은 많은 이들의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한 완성도를 갖췄다는 판단이다.

신형 911 터보S는 4월중 한국시장에 출시한다. 판매가격은 2억5,860만 원부터 시작한다.

요하네스버그(남아프리카공화국)=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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