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국세청이 개청한 이후 반백년 동안 총 20명의 국세청장이 탄생했다.

지난 2014년 8월 취임한 임환수 현 국세청장이 21대 청장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 국세동우회장으로 활동 중인 추경석 청장이 8대, 9대 청장을 연달아 역임했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만들어졌다.

개청 초기 당시 대부분의 국가기관들과 마찬가지로 군(軍) 출신 인사가 '강세'를 보였다.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경제개발 드라이브를 시작한 박정희 정권에게는 국세청이 경제개발에 필요한 '돈(세금)'을 확실하게 만들어줘야 했기 때문에 정권의 최측근을 국세청장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초대 이낙선 청장(작고)을 비롯해 2대 오정근 청장, 3대 고재일 청장까지 잇따라 군 출신 인사가 임명됐다. 이들은 모두 5·16 군사정변에 투신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었다.

1978년 12월 충남도지사, 경북도지사 등을 역임한 김수학 청장이 4대 청장으로 임명되면서 군 출신 청장의 종말을 고하는가 싶었지만 또 다른 군사정권인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군 출신들이 득세를 하게 됐다(5대 안무혁, 6대 성용욱).

1988년 3월 재무부 출신인 서영택 청장이 7대 청장을 역임하고 8대 청장은 최초의 국세청 내부 승진 인사로 발탁된 추경석 청장이 임명됐다. 추 청장은 이미 언급했듯 9대 청장까지 지내며 국세청 유일의 '연임청장'이 되기도 됐다.

이후 임채주 10대 청장에 이어 11대 청장에 이건춘 청장이 임명됐다. 이 청장은 경인지방국세청장, 중부지방국세청장,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역임하고 내부승진을 통해 국세청장 자리에 올랐다.

12대부터는 국세청장 인선의 패러다임 하나가 변화했다.

호남정권(김대중 전 대통령)이 성립되면서 대통령과 동향 인사들이 국세청장에 줄지어 임명된 것. 12대 안정남 청장, 13대 손영래 청장, 14대 이용섭 청장까지 3명의 호남 출신 청장이 탄생했다.

특히 14대 이용섭 청장은 김대중 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권이 첫번째로 선택한 국세청장이었고, 순수한 의미(군 출신 인사 제외)에서 첫 '외부(세제실)' 출신 국세청장이었다.

이용섭 청장이 물러난 이후 15대 이주성 청장, 16대 전군표 청장, 17대 한상률 청장은 모두 내부 승진인사로 청장자리에 올랐다. 15대~17대 국세청장 재임시절은 내부승진 전통을 확고히 자리매김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결국 크고 작은 사단에 휘말리면서 '암흑기'로 귀결되기도 했다.

18대 청장에 공정거래위원장이었던 백용호 청장이 임명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후 다시 내부승진 전통이 부활하면서 19대 이현동 청장, 20대 김덕중 청장, 현 21대 임환수 청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 1대~4대(1966년~1981년) : 국세행정의 기틀 마련하다

초대 국세청장인 이낙선 청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여한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국세청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당시 이 청장이 내세운 국세행정의 운영지표는 ▲세수증대 ▲오명불식 ▲국민계몽.

세수증대는 국세청의 존재 이유이자 당연한 목표지만 오명불식과 국민계몽을 국세청의 운영지표로 삼았던 점은 당시 국민들의 세금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66년 3월3일 국세청 개청식 모습.

개청 첫해 이 청장은 세금징수 목표를 700억원으로 잡아 목표를 달성하고 전년대비 66.5%의 세수증대를 만들어 냈다. 이에 잔뜩 고무된 박정희 전 대통령은 '700'이라는 차량번호가 부착된 관용차량을 이 청장에게 하사해 기쁨을 표하기도 했다.

오정근 2대 청장은 전자세정의 첫걸음을 이뤄낸 인물이다. 오 청장은 세원관리의 과학화에 중점을 두고 컴퓨터 입력장치 35대를 국세청에 도입했다. 아울러 미국의 선진세정시스템을 체험, 외국과의 국세행정 교류도 활발히 진행했다.

고재일 3대 청장은 우리나라 전체 세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부가가치세 정착에 기여했다. 사회적 저항이 거셀 수밖에 없었던 부가가치세 도입을 놓고 연일 독려에 독려를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아울러 고 청장은 국세청의 조직 기강을 확립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거침없었던 그의 인사에서 비롯됐는데, 브리핑 능력이 우수한 직원은 고 청장의 눈에 들어 '승승장구' 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직원은 현장에서 곧바로 벽지 발령을 낼 정도였다는 전언이다.

1974년엔 세무서장 등 서기관급 115명을 한번에 퇴직시킨 일도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 권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지금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1979년 국세청은 금전등록기 설치를 의무화해 과세표준현실화 등 근거과세의 기틀을 마련했다.

1~3대 청장이 군 출신으로 강력한 군대식 리더쉽을 뽐냈다면 4대 김수학 청장은 도지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통 관료식 리더쉽을 앞세웠다. 김 청장이 취임 후 가장 공을 들인 일은 부가가치세 제도 정착과 체계적인 신고 납부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국세청의 강제력보다 국민의 납세의식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세행정을 운용했으며, 국세청을 감싸고 돌던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세무상담실을 개설하고 문제가 많았던 지역담당제를 폐지했다.

또한 반사회적 물가사범에 대한 엄격한 단속을 진행했으며 1980년에는 부동산 투기조사 특별 전담반을 편성해 투기행위 일망타진을 위해 백방으로 뛰기도 했다.

: 내부 승진 국세청장의 탄생

안무혁 5대 청장은 1982년 터진 이철희·장영자 사건의 해결사로 등장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 중 하나로 군인출신이었다.

취임 5일만에 사건 관련 조세포탈혐의자 17명의 재산을 압류, 사건을 잠재웠다. 이와 함께 이른바 명성그룹 사건, 영동개발 사건, 범양상선 사건을 잇따라 처리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1983년 8월 명성그룹 세무사찰 결과 발표 당시 모습.

아파트 투기전매자 1549명과 0순위통장 전매자 417명 등 투기 관련자에 대한 세무조사도 대대적으로 실시했으며 기업접대비를 신용카드로 사용하고 접대비명세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기업접대비 지출 규제를 강화하기도 했다.

당시 암울했던 정치상황과는 달리 국세행정의 '안정'을 추구했다고 평가 받는 안 청장은 국세청 직원들의 친절 문화 정착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에 청장부터 9급 직원까지 모든 국세공무원의 가슴에 친절 마크를 달고 근무하게 했다.

그는 무려 5년 동안 국세청장에 재직하며 최장수 국세청장 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전두환 정권 말기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정원장)으로 영전, 노태우 정권 출범 후에도 갈리지 않고 안기부장에 연임하는 등 화려한 공직생활을 했다.

안 청장의 뒤를 이은 성용욱 6대 청장은 국세행정 뿐 아니라 '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이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세무서 환경부터 은행 수준으로 바꿔야 된다는 일념으로 청사 개선 작업에 몰입했다.

취임 3개월여 만에 전국 122개 세무관서가 민원의 70%를 즉시 처리할 수 있는 새 민원봉사실을 보유하게 됐으며 세무서의 사무 환경도 대폭 개선, 지방정부와 타 기관의 견학행렬이 줄을 이었다는 후문이다.

성 청장의 재임기간은 1년이 채 되지 못했다. 비리(정치자금 모금) 혐의로 10개월만에 물러났으며 그를 끝으로 더 이상 군인 출신 국세청장은 나오지 않았다.

서영택 7대 청장은 공정한 세정과 직원들의 긍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부당한 과세, 억울한 과세는 없애고 탈세에 대해선 엄정히 대처해 세법이 무섭다는 생각을 납세자들에게 심어 주기로 한 것.

하위직 국세청 직원들의 명칭이 '조사관'이 된 것도 서 청장 시절의 일이다. 서 청장은 80년대 후반 광풍처럼 불던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기 위해 당시 국세청 직원의 절반이 넘는 8000명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투기는 주춤해지고 세수는 증대시킬 수 있었다.

8대, 9대 청장인 추경석 청장은 국세청 최초의 내부승진 국세청장으로 국세청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 받는 인물이다. 이리세무서장 시절 '브리핑 청장'으로 불리던 고재일 청장의 눈에 들어 승승장구한 그는 7급 공채 출신으로 국세청장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국세청 조직의 95% 이상을 비고시 출신 직원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추 전 청장 이후 비고시 출신 국세청장은 아직까지 배출되지 않고 있다.

추 청장은 1993년 당시 도입된 금융실명제와 관련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를 차질없이 시행, 국세행정의 획기적 발판을 마련했으며 국세청의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알던 청장으로서 국세청 인사 행정도 바로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7년 1월 국세청은 국세통합시스템(TIS) 구축해 선진세정에 한 발 다가섰다.

10대 청장인 임채주 청장 역시 내부승진을 통해 국세청장에 올랐다. 임 청장은 차장 시절 추 청장과 함께 국세통합시스템(TIS)을 구축, 국세 업무 처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임 청장은 중소기업 지원과 납세자 권익 향상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과세적부심사제도를 완전히 정착시킨 것은 그의 대표 업적으로 꼽힌다. 다만 국세청 개청이래 최대의 스캔들인 '세풍(稅風)'사건에 연루, 끝이 좋지 않았다는 점이 흠.


조세일보 / 이현재 기자 rozzhj@joseilbo.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