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미래 기적을 만들어내는 기부
불과 한 세기 전 한국인들은 빈곤한 생활의 고통을 겪었다. 학교를 다니는 근대 교육 자체가 사치였고 여성 교육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이때 한국 여성을 도와준 것은 미국에서 온 여성 선교사들의 ‘기부’였다.

그들은 돈과 지식, 시간, 심지어 자기 인생 전부를 기부했다. 그들은 여름이면 빈대와 벼룩이 들끓고 겨울이면 뼛속까지 얼어붙는 열악한 거처에서 먹고 자면서 자기 돈을 들여 의복과 음식 및 교재를 준비해 처절하게 가난한 한국 민중의 딸들을 가르쳤다.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梨花學堂)을 설립한 스크랜턴 여사, 이화학당의 당장이던 페인, 프라이, 아펜젤러 등 73명의 여성 선교사가 이런 삶을 살았다. 상당수는 고국에서 잊힌 노인이 돼 한국에서 죽었고 마포의 후미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지금 잘살게 된 우리 한국인이 이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깊은 감사와 한없는 존경이다.

한국은 영국의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 순위에서 64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는 나의 기쁨이 받는 너의 기쁨보다 크다’는 말이 있는데 한국인의 기부지수는 해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여러 기부 중에서 특히 교육에 대한 기부는 미래를 만들어내는 고귀하고 뜻 깊은 실천이다. 필자가 재직하는 이화여대는 미국 선교사들의 기부에서 시작해 일제 말 재단기금 30만원이 없으면 학교 문을 닫게 하겠다는 일제의 탄압에 평생 모은 전 재산 10만원을 이화에 기부한 주태경 여사, 6·25전쟁 후 장학금과 건물 등 유무형의 도움을 준 이화의 미국인 친구들과 ‘이화국제재단’,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 조건 없이 도와준 한국의 고마운 기업 등 수많은 기부로 오늘에 이르렀다. 단언하건대 이런 기부가 없었다면 현재의 이화여대는 있을 수 없다.

오늘날 사회는 자유와 자립의 정신만큼 빈자도 부자도 함께 산다는 공존과 공생의 정신이 중요하다. 이화도 자신이 받은 것처럼 열심히 나눔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여성에게 항공료와 전액 장학금 및 생활비를 지원하는 이화 글로벌 파트너십 프로그램(EGPP),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여성 공익 활동가를 위한 이화 글로벌 임파워먼트 프로그램(EGEP) 등은 이화가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부는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 개화기의 선교사처럼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내 몫을 나눠주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 마음은 사회를 따뜻하게 하고,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고, 당시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기적과도 같은 미래를 만든다. 나눌수록 커지는 기쁨,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과 공동체 유지에 큰 도움이 되는 기부문화가 한국 사회에 폭넓게 퍼졌으면 한다.

최경희 < 이화여대 총장 president@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