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미디어 뉴스룸-MONEY] 식탁위에 부는 '앤티크의 봄'
국내에서 ‘앤티크(골동품) 열풍’이 한 차례 불던 때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진짜 앤티크 제품보다 ‘앤티크 스타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시대품의 스타일을 흉내 낸 70~80년 된 가구가 대부분으로, 10만원 이하의 제품부터 1000만원이 넘는 장식장 등 고가품까지 다양하게 거래돼 왔다.

최근 들어 ‘앤티크 붐’이 다시 불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100년 이상 된 골동품은 1233만2000달러(약 143억원)로 15년 전인 2000년 643만6000달러(약 74억원)에 비해 두 배가량으로 늘었다. 악기류 도자기류 가구류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등장한 앤티크 붐은 과거와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더 강해진 컬렉터’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컬렉터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좋은 딜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묻지마 투자’가 되지 않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방대한 앤티크 세계에서 남들이 잘 모르는 대어를 낚기 위해서는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심미안도 갖춰야 한다. 이런 역량을 갖춘 전문가 뺨치는 컬렉터가 하나둘 배출되면서 ‘나만의 컬렉션’에 도전하는 이가 늘고 있다.

분야도 다양하다. 시계 가구 도자기 유리공예 와인 등으로 각기 다른 전문성을 보이는 컬렉터 집단이 등장하고 있다. 개인 박물관을 열 목적으로 유명 유럽 도자기 브랜드인 마이센, 세브로의 앤티크를 색깔별로 모으는 이도 있다. 서울 이태원의 하이엔드 앤티크 상점인 스칼렛 앤틱의 황보춘자 대표는 “불황으로 앤티크 시장이 양극화됐는데, 하이엔드는 여전히 불황을 비켜가는 영역”이라며 “한 번에 수억원씩 큰 비용을 쓰는 VIP 고객이 있다”고 말했다.

직접 원하는 브랜드와 시대품을 찾아나서는 앤티크 컬렉터가 많아진 배경에는 늘어난 해외여행이 한몫을 차지한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앤티크 문화를 접하고 해외 유명 딜러들과 접촉하면서 이메일 등을 통해 ‘직거래’를 시작한 게 큰 변화다. 또한 유럽 곳곳에 숨어 있는 앤티크 박물관과 페어, 경매장 등을 찾아 ‘앤티크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여행사들도 유명 페어에 맞춰 앤티크 여행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푸드스타일링 붐과 함께 테이블 세팅과 커트러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푸드스타일링 붐과 함께 테이블 세팅과 커트러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앤티크는 옛 시대의 것이지만, 나름대로 뜨고 지는 트렌드가 있다. 한국에서 새롭게 각광받는 앤티크는 스털링 실버다. 유럽에선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앤티크지만 한국에선 인기가 없었던 이 스털링 실버는 은의 함유량이 92.5% 이상인 은 합금 제품이다. 영화 속 식탁에 등장하는 포크, 스푼, 나이프 등이 대표적으로 ‘커트러리’로 불린다. 최근 ‘셰프의 전성시대’를 맞아 식문화와 푸드스타일링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커트러리가 일반 가정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

《취향의 정치학》의 저자인 홍성민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럽에서 취향은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로 작동하는데, 단순히 돈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상층 계급이 될 수는 없다”며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을 키워가고 즐기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거나 투자 목적만을 염두에 둔 소비와는 다르다는 분위기가 한국에 상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주 한경 머니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