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시 경제 살리기에 힘 모아야
총선이 치러진 지난 13일 하루, 수많은 사람이 손등에 투표 도장을 찍은 투표 인증샷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올렸다. 이 도장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개표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개표 결과는 뜻밖이었다. 집권당으로서는 믿기 힘든 결과였을 것이다. 2000년 16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했고, 제1당의 타이틀까지 빼앗겼기 때문이다. 충격은 생각보다 오래갈 것 같다.

총선 결과가 이렇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은 경제실정 탓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제활성화법안 처리에 발목을 잡은 더민주도 남 탓만 할 처지는 아니다.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호남지역이 더민주에 등을 돌린 것만 봐도 그 주장에 공감하긴 어려워 보인다.

혹자는 새누리당의 ‘공천 내홍’을 꼽는다. 설득력 있는 얘기다. 새누리당의 공천파동은 단순한 흥밋거리라기보다 직접적으로 표를 갉아먹은 요인이 됐다. 어떤 이들은 각당의 공천에 즈음해 “요즘 시청률이 가장 높은 방송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정치권 뉴스”라며 실소하기도 했다. 실소와 미소는 의미가 다르다. 이 대목에서 새누리당의 판단착오가 있었던 건 아닐까.

두 번째 실책은 공약에 있었다. 이는 비단 여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정당도 공약집에 민생고를 어루만질 대책을 담아내지 못했다. 각 당의 공약집을 보면 4년이란 기간에 국민이 무얼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우리 국민에게 중요한 건 거대담론이 아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을 어찌 마련해야 할지, 가계빚은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지, 나와 내 자녀의 일자리는 어찌해야 할지, 소리 없는 아우성과도 같이 이런 생계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야의 공약이 이를 충분히 담아냈는지 의문이다.

많은 사람이 착시현상에 빠져 있지만 지금 한국 경제는 위기상황이다. 도처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7%로, 내년은 3.2%에서 2.9%로 하향 조정했다. 수출 감소도 치명적이다. 수출은 지난달 전년 동기 대비 8.2% 줄어든 430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월부터 사상 최장인 15개월 연속 감소세다. 수출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한국으로서는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내 대표기업들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글로벌 시가총액 10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한국 기업은 16개에 불과했다. 이들이 한국 시총 상위 16대 기업인데, 그나마 9곳은 2010년에 비해 시가총액 순위가 떨어졌다. 심지어 시총 절대치가 떨어진 기업도 눈에 띄었다.

이들 대표기업의 매출액 증가 추이도 크게 둔화되는 양상이다. 이들 대표기업의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2010년에 18.4%에서 점차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다가 지난해에는 1.1%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은 대기업 때리기에 몰두하고, 규모를 기준으로 한 대기업 규제 강화, 기업을 옥죄는 경제민주화만 운운할 뿐이어서 답답할 따름이다.

총선으로 커다란 정치일정이 매듭지어졌다. 이제는 경제를 돌봐야 한다. 경제에 대한 얘기들이 단순한 선심성 수사가 돼서는 곤란하다. 국회가, 정치권이 그 의미를 곱씹어 길을 제시해야 한다. 어려워지기만 하는 경제 현실, 일자리나 전세난 같은 서민의 생활고에 여야 모두 깊이 고민해야 한다. 총선 결과에서 보듯 민심은 거스를 수 없다. 곧이어 펼쳐질 보궐선거, 대통령선거 등에서 투표 도장의 향배는 어디로 향할까. 그 답은 서민경제를 생각하는 고민의 깊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권태신 <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