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목련꽃 필 무렵
연구실 창문 너머로 목련이 한창이다. 대부분 만개한 목련꽃 사이로, 아직 꽃잎을 열지 못한 봉오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함께 의대를 들어왔으나, 의사로서 꽃잎을 펼치지 못한 채 다른 길을 걸어간 친구가 떠오른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의예과 합격 후 신체검사를 위한 예비소집 자리에서였다. 부친의 병으로 집안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의 형이 그를 의대에 보내 경제적으로 집안을 일으켜보려 했다는 등 지난했던 삶이 인상적인 친구였다.

그는 또래보다 어른스럽고, 나이보다 성숙한 사고를 했다. 그와 함께한 의예과 2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와의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의대와 적성이 맞지 않아 방황하다가 유급을 당한 것이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그의 근황이 궁금하던 차에 뜻밖에 그의 서울대 수석 졸업 소식을 들었다. 또 신문 기사를 통해 그가 의대 대신 자신이 원한 전공을 찾아 공부했다는 사연을 읽고 난 뒤 다소 안도했다. 유급과 자퇴라는 질곡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개척해 용감하게 걸어간 친구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런 그 친구를 3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됐다.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구절이 떠오를 정도로,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힘들게 들어온 의대가 적성에 맞지 않아 적응을 못하고, 마음의 병까지 얻어 방황하다 다시 국내 최고 명문대 수석 졸업과 함께 유학이란 고된 길을 건넌 친구. 그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신부가 돼 있다. 20대 초반의 여린 목련꽃 봉오리 같던 그도 활짝 피어난 것이다.

험난해 보이기만 했던 세월을 지났다. 그는 그의 길을 찾아서 사제가 돼 종교적 석학으로, 정신적 치유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호흡기알레르기내과 분야의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건강 치유자로 살아가고 있다.

‘기취여란(其臭如蘭)’이란 말이 있다. “두 사람이 합심하면 그 마음의 향이 마치 난초의 향기와 같다”는 뜻이다. 비록 우리가 같은 길을 가진 못했지만, 젊은 날 최선을 다해 뜻을 품고 학업에 매진한 아름다운 발자취들이 각자의 위치에 남아 어두운 사회를 조금이나마 밝힐 수 있는 힘이 되면 좋겠다. 어두운 밤을 환히 밝혀주는 저 목련꽃처럼.

윤호주 < 한양대 국제병원장 hiyoon@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