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태 정치부 차장 mrhand@hankyung.com
[한경데스크] 정치불신 키운 20대 총선

민생법안 처리 등 본연의 임무를 방치한 여야의 4·13 총선 전쟁이 종착지까지 왔다. 253개 지역구의 투표함을 열자 ‘죽을 둥 살 둥’ 총력전을 펼친 각 당의 성적표가 확인됐다. 여야 할 것 없이 ‘막가파’식 공천 파동과 야권 분열 등으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했지만, 선거 결과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민심을 그대로 보여줬다.

4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총선은 여야가 국가 성장의 아젠다를 제시하고 지난 4년간 잘잘못을 가리는 정책 대결의 장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4200만 유권자의 평온한 일상에 끼어들 명분도, 엄청난 선거 비용을 세금으로 보전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실제 총선 비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책정한 법정선거 비용(3270억원)의 몇 곱절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감동 없는 여야 ‘심판론’

20대 총선은 유권자의 눈과 귀를 잡아끌 만한 정책 대결이 없는 최악의 선거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장선 더불어민주당 총선기획단장은 “공천 파동과 정책 대결 없는 여야 ‘진흙탕’ 선거전을 지켜본 국민에게 더 이상 정치에 기댈 게 없다는 확신만 심어줬다”고 평했다.

정책 주도권을 잡지 못한 여야가 꺼내든 카드는 3당3색(色) ‘심판론’이었다. 새누리당의 ‘야당 심판론’에 더민주는 ‘경제 실정 심판론’으로 맞섰다. 국민의당은 ‘양당 체제 심판론’을 내세웠다. 심판대에 오른 당사자들의 책임을 떠넘기는 구호가 먹혀든 것 같지는 않다. 어느 당 어느 후보를 찍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부동층만 두텁게 했을 뿐이다.

부동층이 선거 판세의 변수로 떠오르자 각 당은 선심성 공약으로 막판 승부수를 띄웠다. 8선에 도전하는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전통 텃밭’인 대구 민심이 심상치 않자 현지로 달려가 “10대 기업을 대구에 유치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했고 “여러모로 검토해 보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與도 野도 선심성 공약 경쟁

새누리당은 또 임신·출산·육아를 지원하는 ‘마더센터’ 설립을 비롯해 고교 무상교육 단계적 실시, 만 65세 이상 의료비 정액제 기준 인상 등으로 공약집을 빼곡히 채웠다.

더민주는 사병 월급을 30만원으로 인상하고 노인 기초연금도 3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육아휴직 급여를 통상임금의 40%에서 100%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국민의당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회보험료를 전액 기업이 부담토록 하겠다는 등 선심성 공약 경쟁에 가세했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쏟아낸 공약이 여야 각각 100가지가 넘는다. 각 당이 공식적으로 낸 정책공약집에 담긴 것만 새누리당 180개, 더민주 151개, 국민의당 111개에 이른다.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약 검증단은 재정조달 계획이 빠진 대부분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진단했다.

유권자를 현혹해 ‘이기면 된다’는 식의 선거전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민낯’이다. 이런 정치에 자정 기능이 있을 리 없다. 4·13 총선이 끝났지만 표를 준 정당과 후보를 사후 검증하는 것은 유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정치를 바꾸고 4년 뒤 추상 같은 심판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손성태 정치부 차장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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