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입시교육 아닌 인성·입지교육이어야
“도대체 알파고가 어디에 있는 고등학교냐”고 학부모가 묻는다. 최근 1년간 인터넷에서 검색된 외국어고, 과학고 등 명문고에 대한 2만4000개의 뉴스 건수를 알파고가 무려 한 달 만에 추월했지 않은가. 명문고 출신 우등생들이 지망한다는 의사, 판사 같은 전문직마저 알파고 출신 로봇들이 빼앗는 취업난이 화두다.

한국의 우등생은 암기력과 연산력을 이용한 문제풀이 달인이다. 그러나 달인을 능가하는 신(神)이 나타난 것이다. 메모리(암기력)와 CPU(연산력)를 무한정 추가해서 문제풀이의 신이 된 기계가 일거리를 싹쓸이한다. 그러니 학생들이 달인에서 걸인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취업난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학생들이 세계 최고의 불행감에 시달리고 있다. 상과 벌로 길들여지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욕설, 폭언, 폭행으로 풀거나 술, 게임, 포르노 등으로 도피한다. 무기력증에 빠져 멍하게 허송세월하기도 한다. 즉, 달인이 걸인에서 폐인이 되는 게 큰 문제다.

이미 증세가 심각해서 학교폭력과 학생자살, 학업중단 청소년 수가 증가하고 있다. 불만과 원망과 절망에 뒤틀린 관심병사와 사이코패스가 줄줄이 사고를 낸다. 학교부적응 학생 문제가 사회부적응 시민 문제로 이어지지만 이에 따른 천문학적 사회비용을 치를 여력이 한국에는 없다.

다행히 해결책이 보인다. 벌써 새로운 관심사가 알파고를 대체했다. 이번엔 명문고가 아니라 명문중 소식이다. ‘중기앓이 중’이라는 기사가 대세다. 아무리 미남에다 매너와 식스팩까지 갖춘 ‘태양의 후예’라고 하지만 태국의 왕까지 나서서 자국민의 ‘중기앓이’를 부추기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필자는 생기력(生氣力: vital force)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송중기와 알파고가 붙는다면 무술과 저격 실력에서 또다시 후자의 압승일 것이다. 그러나 기계가 따라잡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전우애와 인류애, 애국심과 충성심, 양심과 진심 등 인간을 아름답고 영화롭게 하는 생기력이다.

생기력의 위력은 이미 세기의 대결에서도 나타났다. 비록 알파고가 4승을 했지만 국민은 1승밖에 챙기지 못한 이세돌에 열광했다. 3연패를 당하고서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 예측불허함에 맞서는 도전심, 밤새 동료들과 복기하는 호기심, 결국 선택의 여지를 찾아낸 비전과 창의력. 우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이런 마음씀씀이에 탄복하고 감동받고 희망을 느낀다.

생기력의 또 다른 이름은 인성이다. 인간성은 우리가 기계나 동물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 살아가게 한다. 기계는 인지적 영역에서 인간을 능가하더라도 감성적 영역에서는 어림도 없다. 감성과 지혜는 여전히 인간이 지닌 최고의 경쟁력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보더라도 기술적 스펙보다는 감동을 주는 디자인에 승패가 갈린다.

인성이란 실력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자원인 생각과 감정, 머리와 가슴(마음)을 다 활용하는 실력이다. 그럼에도 여태껏 우리는 머리 쓰는 기술에만 투자를 해왔다. 이제 우리는 마음 쓰는 기술에도 투자해야 한다. 타인과 협동하면서 융합적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하는 창조화 시대에는 인지와 입시위주가 아니라 인성과 입지(立志: 꿈과 가치관 세우기)위주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니 인성교육은 착한 2등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1등 인재를 위해서 필요한 교육이다. 걸인과 동시에 폐인 문제도 해결하는 교육이다. 다행히 인성교육진흥법이 방향과 방법을 잘 제시해주고 있다. 올해 초 교육부가 수립한 인성교육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도록 박수를 보낸다. 인성교육이 꼭 성공해서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다 함께 행복해지면 좋겠다.

조벽 < 동국대 석좌교수·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