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계약은 대체로 소비자가 신제품을 직접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다. 생김새는 물론이고 기능이나 성능, 심지어 가격까지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장이 열림과 동시에 앞다퉈 줄을 선다. 누구보다 먼저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 혹은 대기 기간을 줄여보겠다는 부지런함 등이 이유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에게도 사전 계약은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다. 신차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기대감을 증폭시킬 수 있어서다. 또 디자인이나 가격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트림별, 편의품목별 선호를 파악해 실수요를 예측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는 생산 시기나 물량을 결정하는 보다 확실한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공장의 생산 효율을 높이고 출고 지연을 방지한다.

[기자파일]자동차 사전계약을 보는 다양한 시각

업체들은 이미 사전 계약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기아차는 신형 K7을 내놓으면서 '20일만에 1만대'라는 폭발적인 사전계약 건수에 화성공장을 풀 가동했다. 초기 5만3,000대로 잡았던 목표 물량도 6만대로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신차를 내놓은 즉시 월간 6,000대 이상의 판매기록을 달성했다. 3월부터 출고를 시작한 르노삼성 SM6도 마찬가지다. 출시 한 달만에 1만대 사전계약을 기록하며 소위 '대박'을 쳤다. 다만 SM6의 경우 예측과 달리 최고급 트림에 계약이 몰려 이외 생산분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다. 따라서 향후 생산물량은 이뤄진 계약에 따라 최고급 트림에 집중할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테슬라의 움직임은 이에서 좀 벗어난다. 지난 1일 테슬라는 내년 하반기 출시할 '모델3'의 글로벌 사전계약을 진행했다. 제품 인도 시점까지 최소 1년 반 정도가 남은 상태여서 가히 파격적이다. 게다가 북미 기준의 판매 가격도 함께 공개했다. 계약금은 1,000달러, 한화 약 114만원이다. 놀라운 것은 이미 온오프라인을 통해 27만여 명이 몰려들었단 사실이다.

업계는 테슬라가 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적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인터넷과 같은 매체를 통해 다수의 개인에게서 자금을 모으는 행위로, 테슬라가 온라인 계약금을 사실상 투자금의 목적으로 거둬들인 것과 유사하다. 혹은 모델3의 사전 인기를 입증해 증자 혹은 외부 투자 유치를 수월히 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또 다시 공장 건설과 제품 개발에 투입하는 순환 구조를 노렸다는 의미다. 어차피 11분기 연속 적자인 테슬라로선 충분히 시도할 만한 방식이다.

[기자파일]자동차 사전계약을 보는 다양한 시각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자동차 제조사들이 사전계약을 진행하고 있지만 지나친 상술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최근 가격이나 편의품목을 대략 어림잡아 놓고 사전계약 실적에 따라 임의로 변경하는 꼼수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또 대기기간을 제시하지 않고 하염없이 기다림을 요구하는 것도 일방적인 횡포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조사가 분명히 알아야할 점은 사전계약이 신차를 기다리는 소비자들의 기대감 표출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제조사는 이러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하지 않도록 부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