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활 가르는 '디지털 빅뱅'] 하루 4~5번 가격 내리는 아마존…'유통 공룡' 월마트 무력화
1962년 미국 아칸소주의 소도시 로저스 내 작은 잡화점으로 출발한 월마트. 1991년 경쟁 업체인 K마트를 제치고 미국 최대 유통업체로 성장한 데 이어 2011년엔 비(非)제조업체로는 처음 매출 기준 세계 1위로 올라섰다. 1980년 이후엔 단 한 번도 연간 매출이 전년보다 감소한 적이 없었다.

월마트 ‘불패의 역사’는 최근 마감했다. 월마트의 2016회계연도(2015년 2월~2016년 1월) 매출은 1년 전보다 0.7% 줄었다. 같은 기간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매출은 26% 늘었다. 반세기 넘도록 승승장구한 월마트도 디지털 혁명을 제대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업체 운명은

[기업사활 가르는 '디지털 빅뱅'] 하루 4~5번 가격 내리는 아마존…'유통 공룡' 월마트 무력화
월마트의 1등 비결은 단 하나였다. ‘세상의 모든 물건을 최대한 싸게 판다’는 전략이었다. 경쟁사를 물리치기 위해 계속 새로운 상품을 추가했다. 이렇게 하나둘 상품 종류가 늘면서 어느덧 13만여종의 상품을 파는 세계 최대 유통업체가 됐다. 아날로그 시대엔 월마트의 ‘전 품목 최저가 정책’이 통했다. 세계 1만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한 유통 공룡을 이길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의 룰’이 바뀌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싸움터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하면서 월마트는 고전했다. 반면 아마존은 온라인 장터를 통해 무한 매대를 실현했다. 파는 상품 수만 3억7000만가지였다. 주문받으면 외부 납품 업체가 배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재고를 관리하는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마존은 품목당 하루에 최소 4~5차례 가격을 바꾸는 정책으로 월마트의 최저가 전략을 무력하게 했다. 작년 11월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에만 총 10억회에 걸쳐 상품 가격을 변경했다.

결국 월마트는 확장 정책을 포기했다. 취급 품목 수를 줄이고 돈 안되는 점포는 없앴다. 월마트의 위상도 떨어졌다. 미국 소매업에서 월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9.9%에서 올해 9.2%로 내려갔다.

월마트의 위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대형마트 매출은 2013년 이후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백화점 매출도 2014년부터 뒷걸음질치고 있다. 온라인 쇼핑액이 매년 늘면서 전체 소비에서 온라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1월 11.7%에서 올 1월 17.2%로 5.5%포인트 늘었다.

모바일 거래는 더 빠르게 증가해 지난 1월 모바일 거래 비중이 전체 온라인 거래의 절반을 넘어섰다.

◆온라인 유통업체 ‘우물 안 개구리’

한국 유통업계도 디지털 빅뱅 시대에 대비해왔다. 정보기술(IT) 강국답게 온라인 중심의 유통업체가 많이 탄생했다.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 온라인 쇼핑몰 등 유통 선진국처럼 구색은 모두 갖췄다.

그러나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다. 쿠팡이 2010년 설립 이후 5년 만에 연간 매출을 1조원대로 키웠지만 해외 매출은 한 푼도 없다. 소셜커머스에서 시작해 아마존 같은 IT 비즈니스 업체로 성장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른 소셜커머스 업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위메프가 지난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온라인결제 서비스 알리페이와 손잡고 중국 역(逆)직구 시장에 진출했지만 걸음마 단계다.

온라인 유통업체 중 유일하게 돈을 버는 오픈마켓 시장은 세계 1위 업체인 미국 이베이에 사실상 점령당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홈쇼핑 업체 등의 온라인 쇼핑몰은 오프라인 쇼핑몰을 그대로 옮겨놔 국내 소비자에게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여영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유통 서비스가 융·복합화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며 “한국 유통업체도 국내 시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