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경제적 자유, 가슴 속 촛불 하나…
경제적 자유는 종종 정치의 희생물이 된다. 정치가 무언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세스로 정의된다면, 그리고 대중이 주인으로 선언되는 그런 민주정치 하에서라면, 정치는 언제라도 경제적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소위 민주성이 강화될수록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것은 주변부 유권자들이다. 주변으로 갈수록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발언권이 기껏해야 선거 때만 보장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의 한 표와 교환할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게 된다. 정치는 그렇게 나선형적으로 나빠진다.

선거권이 확대될수록 선거가 저질화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미국 민주주의가 타락하는 것도 같다. 이민의 유입과 선거권의 확장, 그리고 소위 다문화적 경향이 강화될수록 민주주의는 낮은 곳으로 하강한다. 사회적 지력이 낮을수록 더욱 그렇다. 유권자들은 선거만이 자신의 의견을 경청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말이 안 되는 주장도 선거 때는 면죄부를 받고, 결과적으로 이상의견들이 공론장을 지배하게 된다. 트럼프도 김종인도 강봉균도 그럴 것이다.

심각한 폐해는 정치적 권리선언이 경제적 자유를 침해할 때 발생한다. 우리 헌법에는 공익이기만 하면 웬만한 사익은 침해해도 좋다고 선언하고 있는 조항이 많다. 1987년 헌법 개정은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절한 소득분배의 유지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 헌법 제119조 2항은 6월 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 조항의 후단은 ‘시장의 지배’를 막고,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위한 국가의 간섭을 규정하고 있다.

‘시장의 지배’는 자연법칙의 지배와 사실상 완전히 동일한 말이다. 그러나 시장을 의인화하면서 시장의 지배를 ‘부자의 지배’로 둔갑시키고 말았다. 그렇게 경제적 자유는 헌법적 가치 목록에서 배제되는 모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언제든 침해할 수 있는 자유는 ‘허가받은 자유’라는 형용 모순에 불과하다. 원래 이 조항은 관치 경제에서 민간주도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최후의 방패막이라는 제안 설명과 함께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일종의 입법 사기였던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는 무차별적 정부 간섭으로 재해석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뒤늦게 문제를 인식했으나 이미 10여개 법률이 만들어져 작동 중이다.

‘대한민국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헌법 제119조 1항이 박정희 대통령의 1962년 제5차 헌법 개정 때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이러니다(당시에는 헌법 제111조였다). 아니 거슬러 가면 제헌 헌법의 경제조항은 ‘기업은 공기업이요, 무역은 정부의 허가이거나 공영무역만 가능했던’ 사회주의적 선언들이었다. 6·25전쟁을 겪고 나서야 1954년 개정에서 비로소 자유시장 체제가 도입됐다. 경제적 자유는 그렇게 지그재그의 길을 걸어왔다. 바보들은 제헌 헌법이 사회주의적이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마치 그것이 한국 정치의 원형이요 지향이었던 것처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심하시라. 한국 사회주의는 기껏해야 주자학적이며 농촌공동체적이며 후진적 대동사회주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마땅하다.

최저임금 인상, 무제한의 복지, 공정임금 따위의 구호가 지금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제헌 헌법 입안 과정에서의 논란의 하나도 임금문제였다. 노동자 이익균점권이라는 이름을 가진 임금체계는 다행히 도입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기업이 만들어지고, 투자가 이뤄지고, 일자리가 생겨나고, 임금이 올라가고, 복지국가로까지 왔다. 경제는 바보들의 기대와는 달리 약간의 이해력이 요구되는 시장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선거 시즌이 돌아왔다. 경제적 자유가 또 위기를 맞고 있다. 이 혼란의 선거판 속에서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는 자유주의자들의 학술대회가 지난주 열렸다. 놀랍게도 250여명의 일반인 청중이 모여들었다. 가슴 속에 작은 자유의 촛불 하나씩 켜 들고….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