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따뜻한 금융
봄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계절이다. 여름이나 겨울처럼 극단적이지 않으며 가을과 같은 공허함도 없다. 무엇보다 봄이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겨울의 오랜 냉기를 밀어내는 따뜻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따뜻함은 “온도가 알맞게 높다”는 사전적 정의보다는 “정답고 포근하다”는 감정적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금융은 그동안 차가운 겨울 이미지가 강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위험 관리를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혹자는 “금융과 따뜻함을 같이 논하는 건 모순”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금융(finance)의 어원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 교수의 저서 《새로운 금융시대》엔 금융의 본질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finance의 어원은 라틴어 ‘피니스(finis)’인데, 뜻은 ‘목표, 종료, 완성’이라고 한다. ‘금융은 사회 구성원이 꿈꾸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란 의미다.

이렇게 보면 금융도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 자산 성장, 내 집 마련, 사업 성공…. 모두 저마다의 꿈을 갖고 은행을 찾는다. 금융의 본질은 이 꿈의 완성을 돕는 것이며 고객의 가치를 높이는 게 ‘따뜻한 금융’이다.

은행업과 연관해서 구체화해보자. ‘따뜻한 금융’을 통해 고객의 가치가 높아지면 더 많은 고객이 은행과 거래하고 싶어하므로 은행의 가치도 더욱 커진다. 은행이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란 금융의 기능을 잘 수행하면 사회적 가치도 더욱 증대된다. 이렇듯 은행은 ‘따뜻한 금융’을 통해 상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필자가 몸담은 신한은행의 창립 초기 행훈은 ‘새롭게, 알차게, 따뜻하게’였다. 신한은행은 국내 최초 고객만족경영과 무인점포, 인터넷뱅킹 등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높은 수익성, 건전성을 바탕으로 매년 흑자를 시현하는 등 알차게 성장했다. ‘찾아가는 금융’ ‘문턱 낮은 은행’이 되고자 노력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과거의 따뜻함은 당연한 게 됐다. 시대에 맞는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고, 고객 및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따뜻함이 필요한 시기다. 금융인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고객가치를 높이는 ‘따뜻한 금융’이 우리 사회에 봄기운을 채우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기대해본다.

조용병 < 신한은행장 0318cyb@shinh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