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은 사극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익숙한 장소 중 하나다. 조선시대를 다루는 사극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이 삼삼오오 모여서 국밥과 술 한 잔을 하며 회포를 풀기도 하고, 극의 중요한 전개를 위한 비밀이야기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주막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고려시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식사 및 숙박을 제공하는 형태의 주막이 아니라 단순히 술을 파는 주점의 모습이었다. 주막이 활성화된 것은 18세기 이후로 알려졌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대동법 도입 이후 상품 거래 및 시장 기능이 발달했고, 이로 인해 유동인구와 화폐 유통량이 증가하면서 주막이 활성화된 것이다. 본래는 술을 팔던 주점 형태였기에 식사를 원하는 이용객은 각자 준비한 식량으로 직접 밥을 해먹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점차 여행객들이 돈을 내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는 공간으로 발전되었다.
[역사 속 숨은 경제 이야기] 여행자 신용거래처 '주막'
드라마에서는 주막이 주로 술과 음식을 팔고, 숙박과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주막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유용한 공간이었다. 주막은 많은 사람이 모이고, 교통로에 위치한다는 특성이 있었기에 공공성과 사회성을 띠는 공간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주막을 공공장소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의 기자회견장과 비슷하게 국가시책을 홍보하는 공간이기도 했고, 공문서를 전달하는 우체국과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급한 환자를 위한 임시병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정보를 획득하기에 유용한 공간이었기에 암행어사가 정보를 수집하는 장소이기도 했고, 새로운 문화가 가장 빠르게 전파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주막은 ‘사람’과 ‘돈’ ‘정보’가 빠르게 유통되는 장소였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집중되는 공간이다 보니 주막은 또 다른 부수적인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바로 ‘신용거래’가 가능한 공간으로 발전된 것이다. 신용이란 사람들의 믿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경제영역에서 말하는 신용은 돈을 빌리거나 재화나 서비스를 우선 이용한 뒤 이에 상응하는 금액의 돈을 지정된 날짜에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즉 지급 가능한 돈을 그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신용을 보증하는 증표를 만들어 이를 현금이나 재화, 서비스 등과 교환하곤 하는데, 이런 형태를 신용거래라고 한다. 주식이나 채권 등 증권을 구매해 거래하거나, 개인 신용도에 따라 사용금액 한도를 정해두고 현금처럼 사용하는 신용카드 거래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 조선의 주막에서는 어떻게 신용거래가 이루어진 것일까? 1903년 조선을 방문한 폴란드 작가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기록을 엮은 《코레야 1903년 가을》에는 당시 조선 주막에서 통용된 여행경비 신용거래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태백산맥을 따라 강릉을 거쳐 서울로 이동하는 여정을 시작한 작가는 부산에서 돈을 환전하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시 조선에서 사용되는 화폐는 무거운 동전이었는데, 여행자금을 동전으로 바꾸니 그 무게가 25㎏에 달했다. 그러자 동행하던 통역사는 그 모든 돈을 처음 묵는 주막 주인에게 전해주고 영수증과 교환하기를 권한다. 알고 보니 당시 조선 주막의 네트워크는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여행 중 첫 번째로 머무르는 주막에서 여행경비를 모두 맡기고 영수증과 교환하면, 이후 여행길에서 거치는 다른 주막에서 영수증을 돈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주막 주인들이 여행객에게 받아야 하는 숙박비나 식비, 기타 물품비 등을 영수증에 표시해 두면, 여행객이 마지막에 머무는 주막의 주인은 그 영수증을 받고 남은 돈을 계산해 여행객에게 돌려주었다.

주막의 영수증은 거래당사자 사이에 신용을 토대로 유통되는 일종의 신용화폐였다. 여행경비인 일정금액의 화폐가 여행객의 신용이었고, 이를 증명하는 영수증을 통해 주막에서 신용거래가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날로 치자면 해외여행자가 여행 중에 현금 대신 사용하거나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여행자수표를 당시 조선의 주막에서 이미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자수표는 여행 중에 현금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분실 및 도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수표로, 매장에서 현금처럼 사용하거나 은행 및 환전소에서 현금으로 교환이 가능하다. 당시 조선의 화폐는 무게가 무거워 운반의 어려움, 운반경비의 부담, 분실위험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고 하니, 여행자수표와 비슷한 맥락에서 발전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흔히 신용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상거래는 시장경제 및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상당히 발전된 형태의 핵심 요소로 여겨진다. 신용거래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돈이 없더라도 필요한 재화 및 서비스의 구입을 가능하게 한다. 화폐가 없어도 거래할 수 있다는 편리성과 현재의 구매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시장거래 및 자금유통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나이에 따라 소득과 지출 격차가 큰 인간의 생애에서 비교적 평탄한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용거래를 통해 편리함을 얻을 수 있지만 미래의 소득을 앞당겨 쓰는 만큼 이에 대한 서비스 수수료가 발생할 수 있으며, 지급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을 시에는 연체료 등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대출 및 신용카드 사용이 활성화됨에 따라 사람들이 구매를 쉽게 결정하게 되면서 충동구매 및 과소비의 위험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래당사자는 본인의 신용도와 지급가능 능력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신용거래에 임해야 한다.

현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편리하고 세련된 시스템인 신용거래가 조선의 주막에서 여행자를 대상으로 활용되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폴란드 작가, 세로셰프스키는 여행에 동행한 통역사로부터 조선 주막의 여행자 신용거래, 주막의 일원화된 네트워크와 조직력 등에 대해서 전해 들었지만, 설마 이런 시스템이 정말 가능할까 의심하여 거래를 거부했다고 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기발한 제도였기에 함께 여행하는 통역사조차 믿지 못한 작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면서도, 25㎏의 동전을 들고 태백산맥으로 향했을 외국인 여행객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마음을 열고 조선 사람들과 조선의 문화를 조금만 더 신용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김민정 < KDI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