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전문가에게 맡겨라
“여기는 살려주고, 저쪽은 죽여야 스타일이 제대로 나옵니다.”

병원에서만 생사(生死)를 다루는 게 아니었다. 머리를 다듬어주는 미용사의 제안에도 조금은 다른 해석이지만, 생(生)과 사(死)는 들어 있었다. 생명을 다루는 나와 무관하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을 짓던 찰나, 가위를 든 미용사의 손놀림이 다소 빠르게 진행되자 조금씩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헤어 전문가의 생각과 손님의 생각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순간, 손님의 얼굴을 읽은 미용사는 입을 열었다.

“저는 이곳에서 20년 넘게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사람마다 다른 두상(頭像)만 봐도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스타일이 나올지 잘 알고 있습니다. 믿고 맡겨 주세요.”

병원에선 내가 생명을 관할하는 위치에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 헤어 스타일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미용사였다. 스타일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전문가인 그의 말을 잘 따르고 볼 일이었다.

전문가는 특정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겸비하고 풍부한 경험을 통해 신뢰할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직업의 귀천을 떠나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다. 빠른 손놀림으로 구두 광택을 내 헌 구두를 새 구두로 변신시키는 전문가부터, 찌든 때까지 말끔하게 제거해 헌 집을 새 집처럼 만들어주거나 아무리 해도 안 될 것 같은 막힌 하수구를 손쉽게 뚫어주는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고귀한 가치로 사회의 원동력이 돼주는 일꾼이 무수히 많다.

의료현장에서 근무하는 나도 몸에 관한 한 의료 전문가다. 일반적으로 환자는 고가의 장비를 이용한 검사나 고도의 시술, 수술 혹은 인공 관절 등과 같은 비싼 재료가 들어가는 의료 행위에 대한 지급은 쉽게 용인한다. 그러나 의료진의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둔 의학적 판단과 같은 소프트웨어적 요소에 대한 진료비는 해석을 달리한다. 사실 이런 부분은 객관적으로 계량화하기가 쉽지 않지만, 고도의 의학적 지식과 다년간의 풍부한 임상경험을 갖춘 ‘의학 전문가’의 의견을 중요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임상에서 환자의 병명을 확진하고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검사를 권유했음에도 의료진의 과잉진료로 의심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추후 치료에 필수불가결한 수단이었음을 이해하고 나서 그간의 오해를 풀게 된 적도 많다. 의료진의 고견(高見)은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권할 수 있기 때문에 몸이 아플 땐 의료 전문가인 의사에게 믿고 맡기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머리를 손질하고 거울 앞에 서자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또 다른 내가 보인다. 헤어 전문가에게 믿고 맡겼던 덕분일까. 나의 주장이 아니라 그의 말대로 제대로 살리고 죽인 덕분에 멋진 나를 찾았다.

윤호주 < 한양대 국제병원장 hjyoon@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