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삼성이 기업문화를 혁신하려면
30일 경기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사업장. 새벽 6시20분부터 검은색 임원 차량이 줄지어 들어왔다. 삼성전자가 지난 24일 ‘스타트업 컬처 선포식’을 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예전과 비교해 달라진 게 전혀 없는 ‘아침 출근 풍경’ 그대로였다. 한 임원은 “4년째 이렇게 출근하니 아침 운동을 못해 항상 피곤하다. 머리도 안 돌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 임원들은 2012년 말부터 오전 6시반에 출근하고 있다. 공식 지시는 없었지만, 그룹을 이끄는 미래전략실부터 그렇게 하다 보니 일종의 불문율이 됐다. 불만이 있다 해도 말하기 어렵다. ‘관리의 삼성’으로 상징되는 삼성 기업문화에서는 윗사람의 말과 행동이 ‘지침’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스타트업 컬처를 조성하겠다고 선포한 것은 이런 권위주의적 문화로는 구글 애플 등 창의력으로 무장한 경쟁 기업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느껴서였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지난해 인사팀 조사에서 “상명하복식 문화, 지나친 단기 성과 강조, 윗사람 눈치 보느라 일을 못하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모두 위로부터의 문제다. 선포식에서 사장들이 변화를 외치고, 임원들부터 모두 서명했지만, 정작 직원들 반응은 시큰둥했던 이유다.

선포식 직후 일부 직원 카톡에서는 ‘찌라시’가 나돌았다. ‘문화 혁신을 위한 보고서 작성이 시작되고 수정에 수정을 반복할 것이다. 오는 6월 혁신안 발표 때 중요한 건 사장들 좌석 배치도와 석식 메뉴가 될 것이다. 1주일에 한 번 청바지를 입고 와야 하는 날이 생기는데, 임원에게 청바지 잘 입는 법에 대해 사원들이 보고해야 할 것이다. 야근과 보고를 줄이기 위한 야근과 보고가 늘 것이다’라는 등 냉소적 내용이었다.

삼성전자는 국내외 임직원이 30만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이다. 이런 조직이 달라지려면 경영진의 생각과 행동부터 변해야 한다. 임원들이 최고경영진 눈치를 보고, 직원들은 임원 의전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삼성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업문화 혁신은 용두사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