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김태완 오피니언부장
신학철 3M 해외사업부문 수석부회장

기술에만 매달려선 '반쪽혁신' 밖에 안돼
고객 불편 끝없이 고민해야 창의적 제품 나와
한국기업 수직적 의사 구조가 직원 아이디어 막아
신학철 3M 수석부회장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쓰리엠 회의실에서 3M의 혁신 사례와 한국 기업의 혁신 방향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신학철 3M 수석부회장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쓰리엠 회의실에서 3M의 혁신 사례와 한국 기업의 혁신 방향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3M은 ‘무슨 회사’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기업이다. 광산업체로 출발해 1930년 투명 테이프인 스카치테이프를 개발했고, 1967년 산업용 방진마스크, 1980년 포스트잇 등 수많은 히트 제품을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지금도 생산하는 제품이 사무 의료 보안 등 분야에서 6만여가지나 된다. 매년 300개가 넘는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그래서 컨설팅업체 부즈앤드컴퍼니는 3M을 구글, 애플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기도 했다.

신학철 3M 해외사업부문 수석부회장은 그 비결을 ‘고객 혁신’이라고 했다. “3M이 보유한 원천기술로 소비자의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다 보니 세상에 없던 창의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신 부회장은 “혁신은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소비자의 불편함을 기술을 이용해 해결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글로벌 사업장을 점검하기 위해 한국에 들른 그를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쓰리엠 회의실에서 만나 3M의 혁신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신 부회장은 3M 본사가 있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월요인터뷰] 신학철 수석부회장 "구글도 따라한 '15%룰'이 연 300개 신제품 내는 3M의 혁신 비결"

▷최근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정보기술(IT) 혁신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업의 본질은 가치를 창출하는 겁니다.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소비자의 삶의 질을 높이려면 혁신은 필수적입니다. 혁신을 못 한다면 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점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적용입니다. IT 혁신도 마찬가지죠. 기술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주목하는 기업이 성공할 겁니다. 편의성에 주목해 스마트폰을 개발한 애플과 인공지능, 자율주행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는 구글은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반도체, 자동차, 센서 등을 직접 개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혁신에 기술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로 들립니다.

“기술 혁신에만 함몰해선 진정한 혁신을 이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기술은 혁신의 기본 전제 조건입니다.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운 강점이 있어야 해요. 3M에선 과학기술 플랫폼이라고 부르는데, 하나의 기본 기술만 수십년간 연구하는 팀이 있습니다. 세라믹을 연구하는 팀은 상용화에는 신경 쓰지 않고 경쟁사보다 5~10년 앞서가는 세라믹 원천기술만 끊임없이 개발합니다. 3M은 매년 연구개발(R&D)에 매출의 6%가량을 투자합니다. 지난해에도 18억달러(약 2조1000억원)를 썼어요.”

▷3M만의 혁신 비결은 무엇입니까.

“3M이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회사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마케팅 회사에 가깝습니다. 3M은 임직원 모두가 사람이 사는 모습,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 등을 세계 곳곳에서 지속해서 관찰할 수 있게 장려합니다. 우리가 가진 기술로 사람들의 불편함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을 ‘고객 혁신’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고객 혁신이 기술 혁신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혁신은 1회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혁신은 수천 번에 걸쳐 고객의 불편함을 찾아내고 기술을 접목해서 해결하는 하나의 과정이에요.”

▷기술 혁신이 고객 혁신으로 이어진 예가 있습니까.

“포스트잇 개발이 대표적이지요. 3M 연구원이던 스펜서 실버는 1968년 강력접착제 개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어요. 강력하기는커녕 접착력이 약하고 끈적거리지 않는 이상한 접착제를 만든 거죠. 그는 사내 기술세미나에 결과를 보고했고 이 사례는 3M의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됐습니다. 사무용 테이프 사업부에서 일하던 아트 플라이는 교회 성가대원이었어요. 플라이는 성가집에 자신이 불러야 하는 곡마다 종이를 끼워 표시했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표시한 종이가 바닥에 떨어졌거든요. 어느날 사내 DB를 열람하던 중 실버의 실패 사례를 접했습니다. 플라이는 1974년 실버에게 연락했고 이들이 힘을 합쳐 상용화한 메모지가 포스트잇입니다.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실버의 기술은 아직 DB 안에 있을 겁니다.”

▷한국 기업들도 혁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보여준 성장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몇몇 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잡았지요. 하지만 혁신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선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기업이 아직도 기술 혁신에만 치중하고 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소비자 요구를 읽어내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당신 회사의 최고 강점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기업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게 걱정이에요.”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3M에선 NPVI(new product vitality index)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최근 5년 안에 출시된 신제품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합니다. 3M은 지금까지 아무리 어려워도 이 수치가 34%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사업 환경이 어려워지면 혁신활동을 줄입니다. 5년 하다가 안 하고, 10년 하다가 환경이 바뀌었다고 포기해 버리면 혁신적인 회사라고 보기 어렵지요.”

▷한국 기업들은 왜 지속 가능한 혁신이 어렵습니까.

“한국의 수직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나오기 어려워요. 선진 기업의 혁신 기법을 받아들인 기업들도 아이디어를 받는 데만 치중합니다. 중요한 건 많은 아이디어 가운데 시장에서 통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걸러내는 체계입니다. 한국 기업에선 신입사원이 관찰을 열심히 해서 아이디어를 내 상사에게 보고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을 들을 때가 많지 않나요?”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혁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관리자이고, 깨는 것도 관리자입니다. 혁신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사람을 관리자로 키우는 인적관리시스템이 혁신의 키라고 봅니다. 많은 이가 기술이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혁신의 기본은 사람이에요.”

▷3M에는 혁신을 위한 인사시스템이 있습니까.

“인사평가를 할 때 단기 경영 성과와 더불어 지난 10년간의 리더십 평가를 적극적으로 반영합니다. 이 사람이 혁신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는지를 상사와 동료 등이 점수로 매년 평가합니다. 10년 정도 쌓인 점수를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자율과 공유의 문화를 조성하는 사람이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거죠.”

▷혁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제도가 또 있습니까.

“3M은 혁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대표적인 제도가 ‘15% 룰(rule)’이에요. 구글이 ‘20% 룰’로 따라하는 시스템입니다. 모든 직원이 근무 시간의 15%를 자신이 생각한 창조적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보장하는 제도인데요. 15라는 숫자가 아니라 15% 룰이 가진 ‘자유’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내가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시도해 볼 기회를 얻음으로써 직원 스스로가 쓸모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요. 3M을 대표하는 스카치테이프, 포스트잇 등의 상품이 모두 15% 룰에 기반을 둬서 탄생했다고 보면 됩니다.”

▷기업들이 앞으로 주목해야 하는 분야는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메가트렌드를 읽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있는 현장에 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오염, 고령화사회, 테러리즘 등 시대적 변화에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어요. 변화의 흐름에서 회사가 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잘하는 걸 가지고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회사는 직원에게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해요. 리더, 나아가 직원이 생각할 시간이 없는 조직은 크게 잘못된 겁니다. 조직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목표도 없다는 뜻이거든요.”

신학철 부회장은…

한국에서 평사원으로 출발해 3M 본사 수석부회장에 오른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다. 3M 해외사업부문 최고책임자로 세계 73개 지사 5만5000여명의 직원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 그가 책임진 매출은 3M 전체 매출의 65%인 200억달러(약 23조4000억원)에 달했다. 해외에서 국위를 선양한 공로로 한국 정부로부터 자랑스러운 한국인상(2007년)과 대한민국 국민포장(2009년)을 받았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을 앞둔 1978년 풍산금속에 엔지니어로 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실험실보다 현장에서 제품을 직접 쓰는 소비자와 소통하겠다는 생각에 1984년 한국쓰리엠으로 옮겼다. 기술영업, 소비자사업부 본부장을 거친 뒤 1995년 3M 필리핀 사장으로 부임했다. 3년 뒤에는 미국 3M 본사로 옮겨 2011년 해외사업부문 수석부회장에 올랐다.

△1957년 충북 괴산 출생 △1975년 청주고 졸업 △1979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1978년 풍산금속 입사 △1984년 한국쓰리엠 입사 △1992년 한국쓰리엠 소비자사업본부 본부장 △1995년 3M 필리핀 사장 △1998년 3M 본사 포스트잇 플래그 비즈니스 이사 △2002년 3M 본사 전자소재사업부 부사장 △2005년 3M 본사 산업 및 운송비즈니스 부회장 △2011년~ 3M 해외사업부문 수석부회장

정리=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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