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칼럼] '진정성 없는 소통'이 기업을 망친다
최근 한 경제신문에 실린 낯익은 중견그룹 관련 기사를 읽었다. 채권단이 그룹의 구조조정안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와 채권단이 경영권을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에 시선이 고정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기사화된 중견그룹은 필자가 오래전에 컨설팅 업무를 담당한 곳이었다. 그 때문에 해당 기업의 기업문화 프로젝트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급속히 성장한 대기업 집단의 후진적 지배구조 또는 양적 성장만을 추구한 전략적 실패보단, 그 중견그룹이 갖고 있던 부정적 기업문화가 현재 상황을 초래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 회사는 합병을 통해 급격히 성장한 곳이었다. 그래서 다른 기업보다 문화적 통합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면서 그룹의 핵심가치를 직원들이 공유하도록 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럼에도 컨설팅 당시 직원들의 핵심가치 실천 수준은 전반적으로 미흡했다. 특히 조직학습과 관련한 직원의 실천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직원 개개인이 고객중심의 문제의식과 탐구적인 자세로 자기 분야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계발하고, 업무와 관련한 혁신적 제안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문화를 지녔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 기업은 지금과 전혀 다른 성과를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해당 중견그룹의 직원들은 왜 그런 문화적 특성을 갖게 된 것일까. 사회연결망 분석을 통해 발견한 회사 내 구성원 간의 관계는 매우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시해 줬다.

당시 회사 내 구성원 간의 정보나 지식 교류는 매우 빈번했다. 그러나 이런 원활한 소통에도 불구하고, 정보교류를 통한 고객지향적인 새로운 지식 창출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원활한 의사소통은 조직 내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중요한 요건으로 언급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회사는 정반대 결과를 낳은 것이다.

회사 내 조직학습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가 상사와 부하직원 간 신뢰 관계의 질이다. 그 회사는 대다수 관리자가 구성원과의 활발한 사교 활동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친교활동은 부서원들과의 단순한 친분 쌓기나 의도적인 편 가르기에 그쳤을 뿐이었다.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과정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의 잠재능력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체계적인 조직 학습의 메커니즘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는 조직 내 계층별 관리자의 명확한 리더십 모델이 정립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관리자들이 공식적·비공식적인 소통을 통해서 조직 내 바람직한 기대 행동을 유발하는 코칭(coaching)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기업은 직원들의 업무 행동변화를 유도하면서 궁극적으로 회사의 성과 극대화를 달성하고자 한다. 각 기업이 자사가 지향하는 핵심가치를 기반으로 조직문화를 관리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기업이 동기부여의 측면에서 기업문화가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핵심가치에 부합하는 긍정적 행동을 유발하고자 한다면 기업문화에 부합되는 리더의 역할모델을 잘 정립해야 한다.

리더의 역할모델은 리더가 직원들에게 의미 있는 목표를 제시하고, 목표 달성에 필요한 자원을 지원하고, 업무수행에 필요한 육체와 정신적 기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방침을 제공한다. 관리자들이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직원은 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며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기업의 성과 향상에 기여하게 된다.

이승철 < 삼정KPMG 상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