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들의 20대 총선 비례대표 선정에서 과학계와 노동계가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들 한다. 특히 과학기술계는 각 정당의 비례대표 1번을 휩쓸었다. 새누리당은 사물인터넷 전문가인 송희경 씨를 1번에 배려했으며 당선 안정권에 무려 3~4명의 과학기술인을 배치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박경미 홍익대 수학과 교수를 1번으로 지명했고 국민의당은 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을 1번, 오세정 전 서울대 교수를 2번으로 선정했다. 물론 후보자 개인의 자질이나 역량은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이상하게 됐다.

언제부턴가 한국 정치에서 과학기술계가 비례대표직을 받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그것도 후보 1번으로 낙점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복지 문제나 노동 개혁, 일자리 문제, 세금 등 첨예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각 정당이 오히려 이념중립적인 과학인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포퓰리즘적 정치이념을 숨기는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좌파정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도 그렇다.

정치가 과학에 관심을 두면서 과학기술계가 힘을 받는 건 사실이다. 정부의 과학기술 투자는 전체 GDP에서 4.3%로 5%에 육박하고 있으며 예산 증가속도는 세계 1위다. 외국 학자들은 한국의 과감한 R&D 투자에 혀를 내두른다. 과학 관련 의원입법도 활발하다. 하지만 지금 과학계에선 노벨상은커녕 기초적인 연구성과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AI만 하더라도 선진국에 비해 4.3년이나 뒤처졌다고 한다.

정치가 범람할수록 과학계는 오염되고 퇴색한다. 정치에 줄을 대려는 ‘폴리페서’나 ‘폴리리서처(poliresearcher)’만 늘어난다. 황우석 이후 온갖 과학 프로젝트도 이런 폴리페서들이 좌지우지한다. 이 분야 기관장 자리를 놓고도 갈등은 더욱 커진다.

물론 지금도 연구실의 밤을 밝히는 현장 과학자가 많다. 이들이 정치권 뉴스를 듣고 부아를 내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그런 노동개혁 투사들이 지금까지 뭐 하다가 이제야 “나요 나!”를 부르짖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