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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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이후 외식사업 프랜차이즈가 급격히 늘면서 국내 식자재 유통시장은 구조적 확장기를 맞았다. 식음료사업(F&B)을 기반으로 한 소비재 기업들은 각기 다른 특장점을 앞세워 빠르게 시장을 확대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급부상한 업체가 CJ프레시웨이와 신세계푸드, 현대그린푸드 등 소위 ‘전문기업형’ 식자재유통 계열사들이다.

환경 변화에 적극적 대응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에 비해 한국에선 식자재유통기업 대형화가 10년 이상 늦게 이뤄졌다. 중소영세업체 비중이 90%를 웃돈다. 같은 맥락에서 동반성장위원회가 지정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포함 여부에 관한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10월 임상민 대상그룹 상무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상생 노력을 다짐한 것은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일이다.

이에 비해 한 단계 높은 사업 규모를 갖춘 ‘전문기업형’ 식자재유통업체는 논란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국내 1위 업체로 꼽히는 CJ프레시웨이는 기업형 외식유통 부문이 절대적 매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프랜차이즈 거래처 비중이 가장 크다. 또한 그룹 계열사인 CJ프레시원을 통해 발생하는 매출도 전 부문의 25%에 육박해 F&B그룹을 기반으로 한 기업형 식자재유통 본연의 특장점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동반성장과 관련한 제도 혹은 법규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고 ‘방어력’도 보유한 것이다.

업계 선두권 업체로 분류되는 신세계푸드와 현대그린푸드 역시 각기 다른 전략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 중이다. 대형마트를 주요 타깃으로 삼은 신세계푸드는 그룹 내 핵심 계열사 이마트의 자체브랜드(PB)인 피코크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 역시 범(汎)현대가의 국내외 급식업체로 대표되고 있어 확실한 자기 시장이 있는 등 수익모델이 안정돼 있다는 평가다.

이처럼 식자재유통을 대표하는 3개 대형사는 큰 출혈경쟁 없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일관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식자재유통 기업화가 이미 마무리된 선도국가의 시장 성장률이 정체 중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대형사들의 전략적 방향성은 탁월해 보인다.

돋보이는 중장기 성장모델

업계 1위 업체인 CJ프레시웨이의 중장기 성장모델은 단연 돋보인다. 우선 CJ프레시원이라는 확실한 시장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된다. 지난해 CJ프레시원 매출은 4930억원으로 2014년보다 25% 가까이 성장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인트 벤처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8개 지역거점을 5년 안에 20개까지 늘린다는 중장기 계획을 세웠다. 이 회사 국내 실적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부문 못지않게 해외사업 계획도 고무적이다. 미국과 베트남 두 곳에 해외법인을 보유 중이며 각 법인이 연간 500억원 수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 회사 전체 매출에 기여하는 실적은 미미하다. 하지만 CJ프레시웨이는 지난해 11월 중국 융후이마트와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체결하면서 올해부터 중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융후이마트는 중국 시장 5위 규모의 소매 유통업체로 중국 17개 지역에 약 500개 점포를 보유 중이다. 현지 경쟁력을 갖춘 파트너사와 협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하면서 CJ프레시웨이는 중국 진출 초기에 신뢰도를 높이고 현지시장 적응기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됐다. 융후이마트도 선진적 유통업 비즈니스 모델을 체화할 수 있어 두 회사에 모두 득이 되는 윈윈전략이 돋보인다. 이는 CJ프레시웨이 본연의 기업가치가 간접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두 회사는 상하이에서 글로벌 소싱과 베이징에서 식자재 B2B(기업 간 거래)사업을 시작하며 올해 4월부터 파트너십을 본격화한다. 진출 첫해인 올해부터 기존 해외법인 수준의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CJ프레시웨이 측은 이번 합작법인을 통해 중국법인 매출이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며 2020년까지 연 8000억원 수준의 매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Cover Story] 기업형 외식·프레시원 관련 매출 '탄탄'…중국시장 진출로 '날개'
올해를 기점으로 CJ프레시웨이가 공격적으로 전략을 설정하고 실적 목표를 제시한 것은 국내 식자재유통사업의 현황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는 한편, 업계 선두 업체가 주도할 수 있는 시의적절한 생존전략으로 평가한다. 작년 하반기까지 괄목할 만한 리레이팅을 보이며 재평가받던 식자재유통업체들은 최근 들어 가장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 CJ프레시웨이가 23.1%, 신세계푸드 20.5%, 현대그린푸드는 23.6% 급락했다. 시장성장률 둔화와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3대 업체 주가 하락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 CJ프레시웨이가 선도하고 있는 두 가지 전략 즉, 캡티브 마켓 강화와 신흥시장 진출 모멘텀은 더 높게 평가할 만하다. 진정한 리더십은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하는 법이다.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방어하고, 새로운 시장에 승부수를 던지는 전략적 정수(正手)에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본다.

조용선 < HMC투자증권 연구원 ys.cho@hmci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