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성 한경닷컴 뉴스랩팀장 mean@hankyung.com
[한경 데스크] '미생(未生)'은 알파고가 두렵다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국장 현장의 묘한 오브제는 아자황 박사였다. 나무 바둑판과 모니터 속 바둑판을 하나의 싸움터로 일치시킨 구글의 대리인. 명령자는 1200여대의 컴퓨터가 짜놓은 디지털 매트릭스 속 알파고였다.

아득한 어린 시절부터 기계의 무표정을 학습한 듯한 아자황과 달리 이세돌은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수가 막히면 한숨이 터지고, 착수에 주춤하고 자리를 떴다. 이세돌이 누구던가. 12세(1983년생)에 프로 기사 입문, 스물에 입신(入神) 경지라는 9단에 올랐다. 그 초인(超人) 이세돌이 알파고에 패한 뒤 ‘신의 땅’에서 ‘인간계’로 내려왔다.

이세돌 아닌 나의 패배였다면…

기계적인 아자황, 인간적인 이세돌을 보면서 두려움과 위안을 함께 맛봤다. 두려움의 실체는 인간이 알파고의 결정을 과연 부정할 수 있겠느냐였다. 이 9단의 끈질긴 저항조차 더 초인적인 혹은 가장 진화한 기계연산으로 무릎 꿇린 알파고는 AI 포비아(공포증)를 퍼뜨렸다. 이세돌의 끈기, 도전, 고뇌는 기계가 결코 복사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라는 위안에 마음을 조금 놓았다.

이내 ‘난 9단이 아니다’는 현실 인식에 다시 두려웠다. 객석에서 지켜본 이세돌의 패배는 아름다웠지만, 그 패배가 내 패배가 될 때 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기자인 필자도 머지않아 알파고를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상대는 로봇저널리즘. 아직 인간이 고뇌하면서 쓰는 깊이에 못 미친다고들 한다. 고작 증시 속보, 경기 결과, 지진 발생 등 단순 사실 나열인데 뭐가 걱정이냐고 한다. 이 로봇이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머신러닝)으로 ‘이세돌 기자’마저 꺾는 ‘알파고 기자’로 성장한다면 어떨까. 사실 로봇은 기자와 구별하기 힘든 수준의 기사를 이미 써내고 있다. 시와 소설도 창작하고 있다.

전 세계 언론은 현재 기술의 발전에 발목이 잡혀 있다. 모바일 미디어의 미래는 기술 기반 없이 열리지 않는다. 데이터저널리즘, 가상현실(VR)저널리즘, 소셜저널리즘 등 디지털미디어 지형은 하루가 다르게 난해해지고 있다. 그 기술 파고에 출렁대는 구성원의 공포도 짙다.

인간 독자성의 진화, 쉼 없을 것

알파고는 인류의 과거 분석 및 현재 진단으로 가장 효과적인 미래 해결책을 제시하는 AI 기술로 확산할 것이다. 언론도 예외일 리 없다. 기계가 수십 년치 과거 기사를 긁어와 현 이슈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단 몇 초 만에 쓸 날도 올 것이다. 스스로 독자를 찾고 알아서 추천 시스템을 구축하는 구글·페이스북·애플 로봇 기자들 말이다.

19년 전 IBM 컴퓨터 딥블루가 러시아의 세계 체스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다. 그때 바둑만큼은 기계가 이기지 못한다고 단정했다. 알파고 승리는 이 믿음이 단지 인간의 기대였음을 증명한 사건이다.

로봇 기자가 인간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안락한 믿음 속에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기술 진화를 학습하고 인간만의 저널리즘으로 ‘1승’을 방어할 것인가. 기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은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인간 독자성의 진화 역시 쉼 없을 것’이라는 데 기원해야 한다.

김민성 한경닷컴 뉴스랩팀장 m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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