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현지법인 사옥에서 임원 집무실을 없앴다. 페이스북 등 현지 기업처럼 수평적 기업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임직원 간 소통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는 게 삼성전자의 판단이다. 삼성전자는 국내에서도 이런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인사제도를 혁신한다. 5단계로 돼 있는 결재단계를 줄이고 능력 위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는 기업문화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처럼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인사혁신 나선 삼성전자] 팀장-팀원으로 결재 단순화…삼성전자, 스타트업처럼 조직 바꾼다
◆창의성 높이고 정년 연장 대비

“구글은 중요한 일도 엔지니어-상무(VP)-최고경영자(CEO) 등 3단계를 거쳐 의사를 결정한다. 삼성에서는 다르다. 대여섯 단계가 있다 보니 일선 직원의 아이디어가 사업부장(사장)에게 전달되려면 한 달 이상 걸린다. 그것도 중간에서 차단되기 일쑤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이런 복잡한 직급 체계에서 나오는 비효율을 없애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게 하려면 인사 체계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처럼 수평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오는 24일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이란 이름의 행사에서 직급 축소를 발표하는 이유다.

이번 인사 체계 개편으로 대리는 ‘선임’, 과장은 ‘책임’으로 바뀐다. 차장과 부장은 ‘수석’으로 호칭이 통일된다. 직급만 따지면 하나가 줄어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 직급이 아니라 직무 중심으로 조직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차장이 팀장을 맡기 어려웠다. 앞으로는 이런 관행이 깨진다. 수석(차장)이나 책임(과장)은 물론 선임(대리)도 팀장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인사개편을 계기로 직급보다는 ‘팀장-팀원’이라는 직무 중심으로 업무체계를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해져 효율성과 업무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인사체계가 정착되려면 능력위주 평가가 자리잡아야 한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연봉산정 기준을 능력 위주로 재편하기로 했다. 때가 되면 연봉이 오르는 연공서열식 요소는 가능한 한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인사평가도 절대평가 요소를 가미해 능력만 있으면 좋은 평가를 받도록 했다.

삼성전자의 인사체계 개편은 60세 정년 연장에 발맞춰 도입한 ‘임금피크제’ 연착륙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직원들은 일정 기간 내에 승진하지 못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퇴사에 내몰렸다. 직무 위주로 바뀌면 능력에 따라 팀장을 맡기 때문에 승진을 못해도 팀원으로서 업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직급 축소 기업 전반으로 확산

창의성 저하는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기업의 고질적 병폐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지난 15일 발표한 ‘한국 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보고서’를 보면 한국 기업의 77%가 글로벌 기업 평균보다 조직건강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론 습관화된 야근과 상명하복식 조직문화, 과도한 보고와 회의로 생산성이 떨어진 것으로 평가됐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업들은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인사체계 개편에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내년부터 근속연수만 채우면 대리-과장-차장-부장까지 자동 승진시키기로 했다. 대신 파트장 팀장 등 ‘직책’을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기로 했다. 사실상 현행 직급 체계를 무의미하게 바꿨다. 인사평가 방법도 개인의 업무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바꾸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2011년 직급을 축소하고 연 단위로 누적된 인사마일리지(성과점수)가 기준에 도달하면 자동 승진하도록 변경했다. SK텔레콤은 2006년부터 직원들의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했으며, 포스코 한화 등도 이후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