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I 육성, 'K도스' 실패서 배워야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결은 알파고의 4 대 1 승리로 끝났다. 1956년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연구된 이래 60년 만에 거둔 성과다. 오랜 시간 여럿이 공동으로 쌓아 올린 연구 결과가 마침내 바둑에서 가장 재능 있는 인간을 넘어섰다. 이로써 바둑처럼 결정을 내리기 위한 모든 정보가 공개돼 있고, 목표와 규칙이 명확히 정의된 문제라면 어떤 문제라도 풀어낼 가능성이 높은 학습엔진을 갖게 됐다.

이 9단에게도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마치 ‘인간 두뇌의 최후 보루’가 된 것 같은 압박감, 누적된 피로, 난생처음 대결하는 상대 등 최악의 조건에서 3연패를 당하면서도 불굴의 정신력으로 도전해 4국을 따내는 장면은 챔피언의 위대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최종국에서는 중국룰에서는 불리하다는 흑을 선택하고, 알파고의 버그를 유발하기보다는 서로 최선의 바둑을 뒀을 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존엄한 선택이었다. 중반까지 유리했으나 인간이기에 승부처에서 한순간 마음이 약해지면서 결국 패했지만, 일체의 변명도 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돌리는 챔피언의 품격도 보여줬다.

알파고 다음에는 컴퓨터가 자의식까지 갖게 돼 인간을 지배하려 드는 시대가 곧 펼쳐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컴퓨터는 최소한 세상을 접수하도록 프로그램돼 있지는 않다. 반면 우리 주변에는 그렇게 프로그램된 것이 많다. 예를 들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오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번식 가능한 모든 공간을 접수하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런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보다 컴퓨터를 더 잘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

컴퓨터가 세계를 지배할 가능성보다 훨씬 시급히 논의해야 할 사회적 문제들이 있다. 우선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산업 현장에 도입되면 대량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 직종에서 과거에 10여명이 하던 일을 1~2명이 인공지능의 보조를 받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공장과 사무실 자동화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강도로 진행될 것이다. 또 인공지능은 빈부 격차를 확대시킬 것이다. 부자들은 다수의 인공지능을 구입해 생산력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모든 사람이 지금보다 더 지능적이 되는 데 인공지능 기술이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정부는 또다시 얼마를 투자해서 단기간에 우리의 인공지능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관련 업계의 반대를 무시하고 추진했지만 지금은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한국형 운영체제 ‘K도스’, 한국형 유튜브 ‘K튜브’ 등 수많은 사례가 떠오른다. 한국에도 인공지능 분야에 의욕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많이 있다. 정부는 이들이 연구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보조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또 아이들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르쳐야 한다. 객관식 보기 중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일에서는 사람이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 인간이 컴퓨터보다 뛰어난 점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상상력을 직역하면 ‘어떤 모양을 떠올리는 능력’이다. 상상력을 키우는 데는 독서가 최고다. 창의적인 생각은 멍하니 있을 때 많이 나온다. 우리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느라 너무 바쁘다.

구글은 막대한 광고 효과를 누렸지만 우리도 전 국민이 인공지능의 위력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 이제 차분히 인공지능 시대를 어떻게 준비할지 생각해야 한다.

감동근 < 아주대 교수·전자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