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공시족과 실업률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경쟁률이 2000 대 1에 달했다는 분석이 있다. 보통 33명 뽑는데 평균 6만3000명이 응시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부실한 행정체계와 기록문화를 볼 때 신빙성이 의심되지만, 영 터무니없는 숫자만은 아닐 것이다. 정조 때는 11만명이 응시했다는 기록도 있다. 전근대 농경사회에서 공개채용 일자리가 과거 외엔 딱히 있을 리도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케케묵은 왕조시대 과거와 현대국가의 공무원 임용을 동일시할 수야 없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은 있다. 공복이란 말대로 ‘공무원은 국민을 섬긴다’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공공부문은 역시 갑(甲)이다. ‘공시족(公試族)’이 사전에 등재될 정도이고, 그 숫자가 점증하는 배경에는 이런 요인이 존재할 것이다. 한국인의 DNA에 각인된 ‘완장에 대한 동경’이랄까…. 모든 주기가 짧아져 가는 긴장된 이 세상에 경쟁이 적고 정년보장도 탄탄하다는 점도 메리트다.

그렇더라도 경제가 활력을 잃으면서 민간의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 공시족이 급증하는 것이라면 정말 큰 문제다. 9급직으로 올해 4120명을 채용하는 데 22만2650명이나 몰렸다. 54 대 1의 사상 최고 경쟁률이다. 채용인원이 지난해보다 420명 늘었지만 공시족은 더 많이 증가했다.

공시족은 청년실업률 통계까지 좌우할 지경으로 비중이 커졌다. 2월 청년실업률이 12.5%로 역대 최악이라는 엊그제 통계청 발표를 두고 벌어진 일종의 ‘통계 잡음’도 공시족 때문이었다. 그냥 시험준비만 하면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자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원서를 내면 구직활동자가 돼 실업통계에 들어간다. 지난 1월 말 마감된 9급 공채에 원서제출자가 3만2000명 늘었고, 이 중 2만3000명가량이 청년층이었다. 이 때문에 청년실업률도 0.5%포인트 올라갔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청년실업률이 치솟은 배경 분석치고는 왠지 궁색하다. 조삼모사 행정이 연상된다.

9급에만 20만명 넘게 몰렸으니 7급, 5급까지 포함하면 엄청나게 불어난다. 30만~40만명에 이른다는 관측도 있다. 이 중에서 ‘공무원 적격자’를 가려내기도 예삿일이 아니다. 영어는 인증점수로 평가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내신성적 반영하듯 학교 성적을 반영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9급직의 일정비율은 고졸자로 학력을 역제한하는 방안도 재추진될 모양이다. 공시족 문제는 민간에서 좋은 일자리가 쏟아지면 간단히 해결된다. 공직의 구인난을 풀기 위해 인사혁신처장이 기업을 찾아다니는 시대는 언제나 오려나.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