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장진리 기자]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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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은 안 된다는 편견에 ‘시그널’은 속절없이 표류했다. 드라마판 ‘살인의 추억’으로 기획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시그널’이지만 장르물의 한계라는 잣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편성이 보류된 ‘시그널’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tvN이었다. CJ E&M이라는 대기업의 자본과 표현이 조금 더 자유로운 케이블 채널의 장점을 200% 활용한 tvN은 튼튼한 ‘시그널’의 뼈대에 김혜수, 이제훈, 조진웅이라는 어벤져스급 캐스팅을 완성해 드라마의 뿌리부터 성공 DNA를 심었다. 반(半) 사전제작 형식으로 만들어진 ‘시그널’은 ‘장르물은 모든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편견을 보기좋게 깨고 새로운 성공신화를 이룩했다. 채널과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은 진정한 웰메이드 드라마의 승리였다.

‘시그널’의 주인은 당초 SBS였다. SBS에서 연이어 ‘싸인’, ‘유령’, ‘쓰리데이즈’ 등 장르드라마를 선보였던 김은희 작가의 신작이었던 ‘시그널’은 SBS와 편성 이야기를 거의 끝마친 상황이었다. 연출은 ‘보스를 지켜라’, ‘세 번 결혼하는 여자’ 등을 연출했고, 현재 ‘그래, 그런거야’의 연출을 맡고 있는 손정현 PD로 결정됐다. 김은희 작가와 기획 초기 단계부터 함께한 것으로 알려진 손정현 PD는 당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며 직접 ‘시그널’에 대한 기대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이어 장르물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SBS는 이번에도 제작비 투입에 비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 ‘시그널’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했고, 결국 ‘시그널’의 편성은 불발됐다. 그러나 이내 개국 10주년을 맞아 좋은 드라마 찾기에 전력투구하던 tvN이 ‘시그널’에 관심을 보였고, 연출로 ‘미생’으로 방송계에서 가장 핫한 PD가 된 김원석PD가 낙점됐다. 장르물의 대가 김은희와 ‘디테일의 장인’ 김원석, 하늘이 내린 만남이었다.

기획과 제작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캐스팅 역시 ‘역대급 라인업’이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는 김혜수-이제훈-조진웅 황금 캐스팅으로 조합을 마쳤다. ‘미생’으로 김원석PD와 호흡을 맞출 뻔했던 이제훈은 ‘시그널’로 마침내 김 PD의 손을 잡았고, ‘충무로 흥행 0순위’ 조진웅 역시 강한 믿음으로 ‘시그널’ 호에 올라탔다. 방송계를 깜짝 놀라게 한 김혜수의 캐스팅 역시 일사천리였다. ‘거절은 뻔하지만 손해볼 건 없다’는 각오로 건넨 대본에 김혜수는 “대본이 너무 재밌다.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며 흔쾌히 ‘시그널’ 출연을 결정했다. 한 방송관계자는 텐아시아에 “김혜수의 케이블 진출은 방송계에서 하나의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졌다”고 김혜수의 ‘시그널’ 출연 의의를 밝혔다.

안 될 이유는 없었지만, 잘 될 자신은 없었던 장르물. 일각에서는 “시청자들은 안방에서까지 괴로운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아한다”고 ‘시그널’의 흥행 가능성에 물음표를 띄우기도 했다. 그러나 ‘시그널’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다. 사라진 사람들, 잡히지 않는 범인, 풀 수 없는 범죄의 비밀. 분명 한계는 있었지만, ‘시그널’은 그 허들을 넘어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김혜수, 이제훈, 조진웅 세 배우는 완벽한 연기로 시청자들을 홀렸고, 과거와 현재의 무전을 통해 ‘포기하지 않으면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그려낸 ‘시그널’의 묵직한 메시지는 안방을 전율시켰다. 이제 세 사람이 함께 할 마지막 무전만이 남았다. 분명히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장르물의 한계를 인정하는 대신, 더 높은 완성도로 더 큰 울림을 완성한 ‘시그널’은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바꿨다.

장진리 기자 mari@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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