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안보·경제는 별개…'마늘 분쟁' 실패 되풀이 말아야
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을 사드 배치 반대 이유로 드는 전문가가 의외로 많다. 2000년 한국과 중국의 ‘마늘 분쟁’ 사례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경제보복이 있을 경우 한국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게 반대 논리의 핵심이다. 우선 한·중 마늘 분쟁은 한국 경제외교의 한심한 수준을 보여준 사례인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0년 6월 한국은 국내 산업 피해를 이유로 중국산 마늘에 대해 315%의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중국은 1주일 뒤 한국산 휴대용 무선전화기와 폴리에틸렌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얼마 안 가 비밀협상을 통해 마늘 관세율을 예전 수준인 30%로 돌려 놓고, 향후 3년간 일정량을 관세 할당 방식으로 의무 수입하기로 합의가 이뤄지며 분규는 마무리됐다.

그 후 비밀협상 사실이 알려지자 협상 내용을 반대하는 대규모 농민시위가 발생했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세이프가드 규정에 맞게 추가 관세율을 부과했고, 조치는 즉시 WTO에 통보됐다. 문제는 중국산 수입 마늘 총액이 약 900만달러인 데 반해, 중국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한국산 수출품의 총액은 무려 5억1300만달러였다는 사실이었다. 중국이 ‘상응 수준의 조치가 가능하다’는 WTO 규정은 물론 국제 관례를 위반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WTO 회원국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양자 간의 외교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가 위와 같다는 것이 당시 한국 정부의 설명이었다.

당시 중국은 WTO 회원국이 아니었고, WTO에 가입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WTO의 전신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하기 위해 중국이 1986년 처음 가입 신청을 한 점을 감안하면, 중국은 WTO에 가입하기 위해 장장 15년을 노력한 셈이다.
[뉴스의 맥] 안보·경제는 별개…'마늘 분쟁' 실패 되풀이 말아야
경제외교 활용 못한 마늘 분쟁

그렇다면 총량 기준으로 자그마치 50배의 보복 조치를 감행한 중국은 WTO에 가입할 자격이 있었을까. 당시 한국은 WTO 주요 회원국을 향해 중국의 터무니없는 무역 행태를 고발, 중국의 가입을 저지하거나 늦출 수 있었다. 중국 입장에서 WTO 가입과 900만달러의 마늘 수출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했을까. ‘경제 외교력은 상대적으로 결정된다’는 진리는 이런 설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한 뒤 승리하면 물론 좋고, 설사 부족하더라도 부족한 만큼만 양보하면 그만”이란 얘기다.

동맹국의 힘은 어디에 쓰기 위해 존재할까. 중국의 WTO 가입 결정의 최종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중국의 억지를 꺾기 위해 대미(對美) 경제외교를 전개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게 그동안 통상 전문가들의 줄기찬 주장이었다. 그런데 사드 배치 반대 이유를 경제보복 가능성에서 찾는 것은 한마디로 “과거의 한심한 경제외교를 되풀이하자”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사드 배치를 핑계로 중국은 경제보복을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먼저 한·중 양국 간 상호의존이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중국 간 관계에 대입시켜 현실적으로 해석해 보면 “중국이 한국을 건드리면 중국도 아프다”는 뜻이 된다.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품 중 약 70%가 중간재라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최종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중간재는 상대적으로 대체성이 낮다. 한국의 중간재 수출에 대한 보복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약 25%를 차지하는 기계, 설비 등 자본재 역시 성격은 비슷하다. 대체성이 높은 소비재는 상대적으로 보복이 쉽지만 비율은 5% 정도에 불과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교전 당사국이던 독일과 영국, 프랑스가 서로의 교역만은 손대지 않은 걸 보면 상호의존의 위력을 아는 데 무리가 없다.

그렇더라도 중국이 막무가내로 보복하면 어떻게 할까. WTO 규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상응하는 보복을 취한 뒤, WTO에 제소해 중국이 부당하다는 판정을 유도해야 한다. 과거 중국의 황당한 무역 행태를 감안할 때 한국에 유리한 결론을 끌어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규에서 비롯된 중국의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 금지가 WTO 판정에서 패소한 사실을 보면 그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보복 쉬운 소비재 비중은 5% 뿐

올 연말까지 중국에 대한 WTO의 시장 지위 부여 여부가 결정된다. 미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는 중국 경제의 반(反)시장 행태를 트집 잡아 시장 지위 부여를 반대하고 있다. 한국을 경제보복한다면 이보다 더 반시장적인 행위가 있을까. 한국 경제외교의 또 다른 공략 포인트가 있다는 의미다.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와 아시아투자개발은행(AIIB)을 통해 모든 국가에 공평한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를 만들겠다”고 나선 중국으로선 당연히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드 배치 당사자는 한국과 미국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양국의 공동 이해가 존재한다는 뜻이므로 미국의 개입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의 요청이 있는 경우 미국은 가만히 있을까. 자국의 이해인데 왜 그냥 두고 보겠는가.

물론 시나리오일 뿐이지만, 최근 미국 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환율조작국 지정 법안을 중국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위안화 평가절하를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지난해에만 1조달러를 허공에 날려버린 중국 당국이 고통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중국에 대한 정경분리 접근 필요

중국 경제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추락하는 경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살려보겠다는 중국 당국이 국내외 파장을 감수하며 경제보복을 감행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앞서 ‘경제 외교력은 상대적으로 결정된다’는 설명은 이런 것들을 두고 한 말이다.

경제는 경제 논리대로, 안보는 안보 논리대로 다루면 그만이다. 흔히 말하는 정경분리 접근 방식이다. 정경분리 원칙은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위대한 지도자 덩샤오핑의 작품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이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현실 역시 동일한 원칙에 비춰보면 별로 이상할 게 없다. 반면 한국은 지금도 그와 같은 기본 논리를 잊은 채 걸핏하면 중국에 대해 지나친 기대, 과도한 포장을 한다. 헷갈림은 지금까지로 족하다.

김기수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