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하춘화 씨가 지난 2월23일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이연배)에서 열린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 가입식에서 데뷔 55주년 콘서트 수익금 전액을 기부한 뒤 인터뷰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가수 하춘화 씨가 지난 2월23일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이연배)에서 열린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 가입식에서 데뷔 55주년 콘서트 수익금 전액을 기부한 뒤 인터뷰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리사이틀 여왕의 '나눔과 사랑'

1974년부터 공연 수익 기부 시작
55주년 콘서트 1억2000여만원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액 기부
"그 돈은 원래 제 것이 아니죠"

참고 견디며 사는 가수의 인생

바빠도 하루 1시간 이상씩 연습
스트레스 많지만 가수는 천직
콘서트 통해 관객과 직접 소통
자신의 단점을 스스로 찾아내야


올해 데뷔 55년을 맞이한 가수 하춘화 씨(60)에겐 앞에 붙일 마땅한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그가 남긴 기록 자체가 인생의 수식어다. 여섯 살에 처음 무대에 오른 뒤부터 한 번도 가수란 직업을 놓지 않았다. ‘날 버린 남자’ ‘물새 한 마리’ ‘나이야 가라’ 등 수많은 히트곡을 포함해 그의 앨범에 수록된 곡이 2500여개에 이른다. 지금까지 개인 공연을 8500회 이상 열었으며 1991년 리사이틀 세계 최다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40여년간 자신의 공연 수익을 기부해왔다. 그 기부금이 200억원에 달한다.

인터뷰를 위해 하씨를 세 번 만났다. 지난 1월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데뷔 55주년 기념 콘서트 ‘하춘화 노래 55 나눔·사랑 리사이틀’ 무대 위에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속 안무로 탭댄스를 추는 그를 먼발치에서 바라본 게 첫 번째였다.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KBS별관에서 만난 게 두 번째였고, 다음날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 가입식에 간 게 세 번째였다. 하씨는 이날 55주년 콘서트 수익금 전액인 1억2134만3721원을 기부했다.

그는 말할 때 자신을 주어보다 목적어로 두는 습관이 있었다. “내가”란 말보다 “대중이 저를…”이란 말을 훨씬 많이 썼다. 무대 위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철저히 타인을 위해 사는 것 같았다.

공연의 진정한 마무리는 기부

[人사이드 人터뷰] 40여년간 200억원 기부한 가수 하춘화
하씨가 공연 수익금을 기부하기 시작한 건 1974년 첫 단독 공연 때부터다. 처음엔 부모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지만, 그 뒤부턴 본인의 의지로 선행을 이어갔다. “1974년 공연 수익금은 당시 경기 안양에 있던 나환자촌 ‘나자로 마을’에 기부했어요. 그 후 제게 기념이 될 만한 공연 때마다 수익금을 모두 기부해왔습니다. 단체에 기부할 때도 있고, 직접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할 때도 있었죠. 제 공연은 무대의 막이 내려질 때가 아니라 공연 수익금이 기부될 때 비로소 마무리됩니다.”

“기부할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는 우문에 “공연할 때 버는 돈을 애초에 내 돈이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저를 사랑해주시는 대중이 직접 공연장에 찾아와 제 무대를 함께 즐기며 주고 가신 돈입니다. 그게 어떻게 제 돈입니까. 그러니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돈은 좋은 일,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야죠. 기부는 꼭 재산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지 않아요. 제 것을 아끼고 쪼개서 하는 거죠.”

하씨는 오는 9일부터 19일까지 아프리카 남부 잠비아로 봉사활동을 떠난다. 그는 “한국의 가수로서 봉사 정신을 실천할 기회를 얻어 매우 기쁘다”며 “가수 생활이 끝날 때까지 나눔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오늘의 실천’ 없인 성공하지 못해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스타의 자리를 지켜온 비결은 무엇일까. 하씨는 “매일의 실천이 조금씩 쌓인 것이라고 본다”며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 가수의 생명은 끝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제게 몸 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많이 물어요. 그런데 가수는 출퇴근 시간이 없는 자유직이잖아요.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낼 수 없죠. 30분이든 1시간이든 그날그날 때에 맞춰 닥치는 대로 운동합니다. 매년 건강검진도 하고요. 밥 세 끼 잘 챙겨먹는 건 기본이지만, 공연 전엔 먹지 않습니다. 배가 너무 부르면 오히려 힘을 못 쓰는 스타일이거든요. 평소 닦은 기초체력으로 공연하는 거죠.”

그는 가요계에서 ‘지독한 연습 벌레’로 유명하다. 스스로도 “작곡가 선생님들이 ‘대한민국에서 연습 가장 많이 하는 가수는 하춘화’라고 하신다”고 할 정도다. “남들보다 철이 좀 일찍 들었어요. 열일곱 살 때쯤 철 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대접을 받으면서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녹음할 때 ‘이 정도면 됐다’ 해도 녹음을 더 하자고 계속 청했습니다. 지금도 하루 2~3시간, 아무리 바빠도 최소 1시간은 연습합니다.”

하씨가 생각하는 ‘좋은 노래’란 무엇일까. “노래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제가 젊었을 땐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라면 뭐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가수가 아니라 작품을 좋아합니다. 요즘엔 노랫말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이 멜로디, 그다음이 편곡이라고 봅니다. ‘좋은 노래’의 기준은 제가 정하는 게 아니라 대중이 정하는 거예요. 제 의지와는 상관없죠.”

이와 더불어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노래는 가수 본인의 노력이 뒷받침된 것”이라며 “대중의 눈은 매우 밝기 때문에 결코 아무에게나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중은 아마추어의 실수는 용서해도 프로의 실수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 프로이기 때문에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연습하지 않으면 곧바로 티가 나요. 가수가 어쩌다가 유명해질 수는 있지만 그 인기를 지키려면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죠.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는 자신이 트로트 가수 대신 전통가요 가수라 불리길 원한다. “‘트로트’ 하면 우리의 가요란 느낌이 살지 않잖아요. 전 우리 전통가요가 마치 김치처럼, 우리네 부모님처럼 늘 평소에 품고 지내는 본능적 원형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젊었을 땐 다양한 분야의 노래를 좋아하다가 중년 이후가 되면 전통가요가 자연히 좋아지잖아요.”

“삶은 곧 인내…자신에게 냉정해야”

하씨는 연예인으로서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고충도 털어놨다. “공연 전엔 무인도에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습니다. 1년 365일 공인으로 사는 게 왜 피곤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이게 제 천직인 걸요. 견디며 살아야죠.”

그래서일까. 하씨의 인생 좌우명은 ‘삶은 곧 인내’다. 그는 “먹고 싶은 것 덜 먹고, 자고 싶은 것 덜 자고, 놀고 싶은 마음 누르며 일하는 것 등 인생 과정 모든 게 인내의 연속”이라며 “항상 긴장하며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방송 활동도 좋지만 콘서트에서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콘서트를 준비할 땐 무대 장치와 디자인, 조명 등 세밀한 부분까지 일일이 챙긴다. “제 이름을 걸고 하는 공연이니까요. 흠이 나면 안 되죠. 노래는 음원 파일이나 CD를 통해 들을 수 있고, 방송에선 가수의 얼굴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가수와 관객이 서로 진정으로 소통하는 자리는 단연 콘서트입니다. 그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최고의 공연을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항상 자신과 주위를 냉철히 살핀다. “처음 데뷔했을 때나 55년이 지난 지금이나 공연 전의 마음가짐은 똑같습니다. ‘언제나 신인’이란 생각으로, 늘 가슴이 두근거리는 설렘을 안고 공연을 준비하죠. 다른 사람들이 제게 하는 칭찬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립니다. 왜냐하면 주변에선 제게 좋은 말만 하거든요. 자신의 단점은 스스로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어요. 전 자신에게 매우 냉정한 사람입니다.”

아너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
2007년 출범…1000명 돌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 국민의 기부 참여율은 34.5%로, 34개 회원국 중 25위로 하위권이다.

70~80%에 달하는 미국, 유럽 등지와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각계각층의 개인 고액기부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를 실천해야 한다”는 인식이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고액기부 단체는 1억원 이상 개인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7년 12월 출범시킨 아너소사이어티는 미국 유나이티드웨이(UWA)의 고액기부자클럽 ‘토크빌소사이어티’(매년 1만달러 이상 기부)를 본떴다. 지난해 12월 회원 수 1000명을 돌파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의 직종은 매우 다양하다. 2015년 12월 말 기준으로 기업인 비율이 45.8%로 가장 높다. 그 뒤로 전문직 12.9%, 자영업 4.5%, 법인·단체 임원 3.5%, 국회의원·공무원 1.7% 순이다. 한성대 건물 경비원 김방락 씨는 2014년 “경비원 일을 하는 사람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1억원을 약정해 화제가 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은 “최근엔 아너소사이어티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이 과거보다 많이 낮아져 중산층의 개인 고액기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