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봄꽃
잔설 속에 핀 노란 꽃잎이 함초롬하다. 저 여린 몸으로 눈밭을 녹이며 봄을 밀어 올리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야생의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 복수초(福壽草)는 눈이나 얼음 사이에서 핀다고 설연화(雪蓮花), 빙리화(氷里花), 얼음새꽃으로 불린다. 황금색 잔처럼 생긴 꽃이라 해서 측금잔화(側金盞花)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앙증맞은 노루귀도 봄의 전령사다. 꽃이 진 뒤 깔때기처럼 말려서 나오는 잎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이렇게 귀여운 이름을 얻었다. 흰색 분홍색 보라색 꽃잎이 연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기노루다. 순천 금둔사의 홍매화도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다. 붉은 꽃이 흰눈 속에 피어 더욱 강렬하다.

올해는 꽃소식이 예년보다 빠르다니 더욱 반갑다. 거제와 남해 일대의 동백은 익을 대로 익었다. 곧 산수유와 생강나무, 유채꽃밭도 미풍에 넘실거릴 것이다. 남쪽에서 시작한 봄꽃은 하루에 30㎞씩 북상한다. 개나리는 오는 15일 서귀포를 시작으로 16~24일 남부 지방, 23일~4월 2일 중부 지방에서 활짝 필 전망이다. 진달래는 하루 정도 늦은 16일부터 피기 시작해 남부에는 18~28일, 중부에는 27일~4월4일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꽃의 절정기는 개화 후 7~10일이다. 이달 중순부터 봄꽃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개막된다. 매화는 전남 광양(18~27일)과 경남 양산(19~20일), 유채꽃은 제주 서귀포(19~20일), 산수유꽃은 전남 구례(19~27일)와 경북 의성(26일~4월 3일), 진달래는 전남 여수(4월1~3일)와 인천 강화(4월12~26일) 등에서 열린다. 국내 최대의 벚꽃 잔치인 진해군항제, 하동 화개장터 십리 벚꽃길축제, 서울 여의도 벚꽃축제는 4월 초에 시작된다.

꽃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건 철쭉이다. 지리산 자락의 바래봉 철쭉제(4월23일~5월22일 예정), 경남 합천의 황매산 철쭉제(5월4~18일), 충북 단양의 소백산 철쭉제(5월26~29일) 등은 마니아들의 특별잔치다. 산행 말고 가벼운 주말 나들이를 원한다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가까운 수목원·식물원을 찾는 것도 좋다.

이른 봄에 피는 꽃은 작고 연하지만 생명력은 강하다. 잔설이 채 녹기도 전에 이리 고운 꽃들을 일제히 피워 올리는 기운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풀·나무마다 움을 틔우는 과정은 제각기 다르다. 하지만 오묘한 생명의 원리는 같다. 올봄에 피는 꽃들의 꽃눈이 이미 지난해 잉태됐다는 것을 알고 나면 세상 보는 시각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