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소기업 죽이는 MRO 상생안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문구유통협동조합 등 중소 유통 관련 단체들은 지난달 23일 LG 계열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회사 서브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가 마련한 ‘상생협약’에 서브원이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 협약은 서브원 등 대기업 MRO 기업이 매출 3000억원 이상 회사하고만 거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1년부터 비슷한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있었지만, 이번에 이름을 상생협약으로 바꿨다. 중소 유통상들은 “서브원 등 일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상생하려 하지 않는다”며 “중소기업인들이 함께 LG그룹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중소기업이지만 인쇄물 제조업체인 한성칼라의 생각은 다르다. 이 회사는 서브원 등 MRO 대기업에 물품을 공급하고 있다. 한성칼라는 최근 수년간 매출이 급감했다. 규제 여파로 2011년 13개였던 MRO 대기업이 6개로 줄어든 탓이다. 한성칼라는 납품할 회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MRO 회사에 납품하며 중소기업이 뚫기 힘들었던 대형 거래처도 여러 개 확보했는데 규제가 생긴 뒤 매출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며 “우리에게는 MRO 대기업이나 중소 유통상이나 똑같은 공급처인데, 그중 큰 공급처에는 공급을 제대로 못하게 국가가 막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한성칼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통 한 개 MRO 대기업의 협력업체 수는 5만개 이상이다. 다른 피해자들도 있다. 기존에 대기업 MRO 서비스를 이용하던 중소기업들이다. 구매대행업 특성상 대규모로 자재를 구매할 수 있는 대기업 MRO의 납품가격이 낮은 경우가 많다. 기존에 대기업 MRO로부터 물건을 받던 중소기업들은 규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싼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셈이다.

중소 유통상들보다 중소 제조기업 수가 훨씬 많다. 유통을 하며 이윤을 얻는 유통상보다는 제조기업들이 일자리 창출도 더 많이 한다. 동반위의 규제는 적은 수의 중소기업을 보호하겠다며 더 많은 중소기업에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이다.

남윤선 산업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