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서 어제 발표한 2월 제조업 BSI(기업경기실사지수)는 63으로 2009년 3월 이후 6년1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메르스 시기인 지난해 6월보다 낮다고 한다. 기업의 체감 경기가 악화일로인 것이다. 기업들의 BSI뿐만 아니다. 소비자 심리지수도 3개월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업가와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중이다.

외국인투자자들도 한국 채권을 팔아치우는 등 ‘셀 코리아’다. 외국인들은 보유 한국 채권의 5%를 최근 들어 팔았다고 한다. 원화가치도 폭락세다. 환율은 어제 달러당 1236원70전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 세계에서도 남미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통화가치가 가장 빠르게 떨어지는 중이다. 단순한 무력감만도 아니다. 철강이나 선박, 조선 등 주력산업이 흔들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은 오리무중이다. 부실기업 정리는 정부의 공언과는 달리 감감무소식이다. 국회는 마비요, 개혁은 겉돌고 있다. 총체적 위기국면이다. 정치권은 이 총체적 난국을 해결하려고 노력이나마 해보기는커녕 총선에서의 득표 가능성, 즉 정파적 유불리로만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약 20년 전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총체적 위기다 보니 뚜렷한 해법도 없다. ‘경제민주화!’ ‘동반성장!’ ‘OO 보호!’ ‘OO 육성!’ 등 경제원리를 왜곡하는 정치 구호들이 경제를 짓누른 수년간의 오류가 가져온 결과다. 결국 “바보야, 문제는 정치!”가 판치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말 그대로 시장을 내팽개쳐왔다. 특히 19대 국회는 이 같은 정치 구호들로 넘쳐났다. 포퓰리즘의 구호가 아닌 각종 경제정책들은 철저하게 기피됐고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경제민주화의 폐해는 심각했다. 이들은 시장이야말로 자본가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길들이고 통제하는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시장의 거래 관계를 약탈로 해석하고 사회적 갈등만 심화시켰다. 19대 국회에서 온갖 규제 악법이 남발됐고 제멋대로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골목상권을 살린다며 유통혁신을 틀어막았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내세워 산업발전을 막고 그나마도 외국기업의 배만 불렸다. 기업가들은 파렴치범으로 몰렸고 그렇게 시장의 자유가 죽었다.

정작 노동개혁 법안이나 ‘원샷법’(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은 누더기가 됐으며 서비스산업 활성화법은 아직도 통과되지 않고 있다. 의료민영화는 물 건너갔고 교육 정책도 갈 길을 잃어버렸다. 대체 우리 경제가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두려움만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의욕은 꺾였으며 기업가들은 방향을 잃었다. 시대착오적 이념은 결국 시장의 잔혹한 복수를 불러올 태세다. 시장의 복수는 기업을 망하게 하고 우리 삶을 파괴한다. 위기가 왔으나 위기 감지기는 꺼져 있다.